딥디크 diptyque 열정과 상상력을 담은 '마법의 향수'

브랜드 스토리 / 프랑스의 향수 브랜드 '딥디크' 

 

 

 

 

 

 

 

프랑스 말로 '2단 접이식 목판화'을 의미하는 딥디크는 접혀있던 화판을 열었을때 하나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두 개의 그림이 나오는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맹 매장의 창문 디자인을 2단 접이식 화판처럼 만든 것도 삽화, 디자인, 인테리어 등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타인과 차별화 된 천연의 향을 취향에 맞게 사용 할 수 있는 니치(Niche)향수 시장이 성장중인데, 

오늘은 니치향수의 대표이자, '전 세계의 상류사회가 선택한 비밀의 향수' 딥디크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프랑스 파리 생재르맹 34번가 딥디크매장 / 출처 딥디크 한국 수입사

 

 

 

1961년 프랑스, 파리 생재르맹 34번가 모퉁이.

영국 출신의 화가 데스먼드 녹스 리트무대 디자이너 이브 쿠에랑건축가 크리스티앙 고트로가 모인 작은 패브릭 부티크에서 딥디크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직접 만든 아름다운 패턴의 패브릭을 제작해서 팔았습니다.

 

"우리는 돈을 좇기보단 열정과 상상력을 좇았고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어 의기 투합했다." -크리스티앙 고트로

 

 

 

이브 쿠에랑(좌), 크리스티앙 고트로(중), 데스몬드 눅스-리트(우) / 출처 Diptyque

 

 

 

딥디크 부티크에 온 고객들은 원단보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뛰어난 세 명의 창업자가 직접 만들거나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 놓은 인테리어 소품들에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당시는 편집숍이 생소한 개념이라 오히려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수입한 향초와 포푸리(꽃잎, 나뭇잎, 나무껍질 등을 말려 쟁반 혹은 천주머니에 담아 놓은 것)를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후 이들은 직접 향초 제작에 나섰습니다. 1963년 화려하거나 인위적인 향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포푸리향의 3종의 향초를 내놓았는데 불티나게 팔렸지만 '파리 5월혁명' (68혁명) 이라는 대대적인 학생운동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패브릭이 팔리지 않으면서 생긴 자금난의 어려운 상황에 닥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1968년 계피,나무,꽃, 정향 등 다양항 향기를 느낄수 있는 딥디크의 첫 향수 '로(L'eau)'가 출시 되었습니다. 이 후 1973년, 1975년에 향수를 추가로 출시하였습니다.

 

 

 

 

딥디크가 첫 출시했던 3가지 향초 (현재도 판매중) / 출처 diptyque

 

 

이렇게 세 개의 향수가 모두 성공한 후에 딥디크는 향 사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패브릭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모두 정리합니다. 이후 세계적 조향사들과 협업을 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딥디크만의 향을 만들어 냈습니다.

 

 

 

 

딥디크의 베스트셀러 '도손'은 쿠에랑이 어린시절 하롱베이 도손의 바닷가에서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내놓은 향수입니다. 튜베로즈, 오렌지 블러섬, 재스민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해풍을 따라 느껴지는 은은한 향신료향과 꽃향기의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튜베로즈는 1년에 딱한번 피우는 꽃인데 이 자극적인 꽃향기를 다른 자연의 향들과 조화시켜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꽃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쿠에랑의 또 다른 걸작이자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인 '탐다오'는 동남아시아의 숲과 산에서 착안한 향수입니다. 습하게 불어오는 공기를 머금은 저녁 바람의 향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샌들우드, 신선한 사이프러스향 등을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마이조르 샌들우드, 사이프러스, 백향목 등에 지중해 식물인 머틀을 더해서 송진의 향과 어우러지도록 했습니다. '탐다오'의 향을 처음 맡을 땐 자극적이면서도 신선한 과일과 폭포도 연상된다고 합니다. 

 

 

 

딥디크 diptyque 도손 doson

 

 

 

 

패브릭에서 인테리어 소품, 향초와 향수까지 딥디크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한가지는 지켜왔습니다. 바로 자유로운 갊과 진정성 있는 디자인 이었습니다. 자유로움과 진정성은 딥디크를 딥디크 답게 유지시켰습니다. 딥디크는 트렌드나 소비 패턴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습니다. 돈이나 야망등의 상업적인 것보다 꿈과 상상력, 자유롭고 창의적인 진실로 아름다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현재는 규모가 커져 런던의 사모펀드에 인수되어 세계적으로 확장된 딥디크는 파리와 런던 뉴욕 등 9시 도시에 17개 부티크 매장을 운영중이며, 국내에도 성공적인 런칭은 물론 40여개 국가에 진출해 700여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딥디크의 철학은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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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 Van Cleef & Arpels

 

이 브랜드의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도 아마 활짝 핀 네 잎 클로버와 로맨틱한 나비를 모티브로 한 형태의 주얼리는 익숙한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1896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반클리프 앤 아펠 (Van Cleef & arpels)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반클리프 아펠은 전설적인 고객들에게 시간이 지나도 결코 퇴색하지 않을 독특한 창작 주얼리를 제공해왔습니다. 각각의 제품은 저마다 놀라운 사연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연은 당연 반클리프&아펠이 탄생하게 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반클리프 아펠의 공식 홈페이지의 <반클리프 아펠의 전설> 페이지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에스텔과 알프레드: 반클리프 아펠을 탄생하게 한 러브스토리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반클리프 아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사랑에 잠재되어 있는 고유의 창조적 에너지입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메종 반 클리프 아펠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19세기에 저물어가던 시절, 보석상의 딸이었던 에스텔 아펠(Estelle Arpels)이 알프레드 반 클리프(Alfred Van Cleef)라는 스톤 커터 공의 아들을 만납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러브스토리, 상상을 초월한 위대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에스텔 아펠 & 알프레드 반 클리프, 1895년 / 출처 반클리프아펠

 

두 사람은 1895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뜨거운 열정, 개척 정신, 화목을 중시하는 가족 윤리 그리고 프레셔스 스톤에 대한 열정에 이르기까지 젊은 연인에게는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함께 창조하고 싶다는 의지와 영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의지가 메종 반 클리프 아펠을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던 열정, 헌신, 믿음, 아름다운 것에 대한 탐닉이 반클리프 아펠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사랑의 도시 파리,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중심가, 방돔 광장에 첫 부티크를 열었습니다.

 

프랑스 방돔 광장 반클리프 앤 아펠 부티크 과거와 현재 / 출처 반클리프아펠

 

 

 

1906년, 알프레드는 에스텔의 오빠인 샤를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세일즈 능력이 출중했던 샤를이 파리 방돔 광장의 부티크를 운영하였습니다. 2년 뒤, 에스텔의 오빠 줄리앙이 합류하였고, 1912년에는 셋째 오빠인 루이까이 비지니스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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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찰스아펠 2.줄리앙 아펠 3. 루이아펠 /출처 반클리프아펠

 

그 후 그들은 수년의 세월 동안 반클리프 아펠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얼리의 대명사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메종의 성공과 더불어 에스텔과 알프레드를 하나로 결합시켜 주었던 사랑은 지금까지도 반클리프 아펠의 수많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반클리프&아펠은 파리로 몰려든 러시아의 귀족들과 미국의 부자들에게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이후 반클리프&아펠 부자들이 모여 사는 리비에라와 비아리츠, 비시 등의 해변의 리조트들에도 가게를 냈습니다.

도비유 해변가의 새로 연 가게에는 슬라보리진 대공과 인도부자 라자 그리고 수많은 귀족들과 화가, 정치가들이 단골손님이 되면서 날로 번창했습니다.

 

1925년 반클리프 아펠은 파리 공예 작품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기하학적 작품들이 대상을 받진 못했지만 활짝 핀 꽃 모양의 브로치가 각광을 받았습니다. 두 송이 장미인데 한 송이는 다이아몬드로 또 한 송이는 루비로 만들었다. 잎사귀와 줄기는 에메랄드로 가장자리는 검은색 에나멜로 장식했습니다.

 

푸시아 클립, 플래티늄, 미스터리 세팅 루비, 라운드, 페어형,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 /출처 반클리프아펠 영상캡쳐>

1933년 독창적이고 헌신적인 '미스터리' 세팅 기술을 탄생시켜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결합시킨 주얼리를 선보였습니다.

 

 

반클리프 아펠은 왕족의 러브스토리에 자주 등장합니다. 아마도 사랑의 에너지로 시작한 브랜드이기 때문일까요? 영국의 에드워드 8세인 윈저 공과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윈저 공작부인인 윌리스 심슨은 반클리프 아펠의 '크라바트' 목걸이를 특별히 아꼈습니다.

 

1955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약혼식에서 착용한 진주 목걸이도 반클리프 아펠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반클리프 아펠은 모나코 왕국의 공식 보석상으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네 잎 클로버 형태의 '알함브라' 목걸이는 1970년대 활동했던 샹송 가수 프랑수아 아르디가 착용하여 프렌치 시크룩의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행운을 믿어야 합니다." - 이는 자크 아펠이 즐겨하던 말로, 메종이 소중이 여겨온 '행운'의 가치는 끊임없는 영감을 선사했습니다. 

 

/출처 반클리프아펠

 

 

사랑의 순간과 함께 시작한 반클리프 아펠은 100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의 순간에 함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행운의 상징으로 불리는 반클리프 아펠.

소중한 날 소중한 이에게 반클리프 아펠만큼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선물이 있을까?

언젠가 나에게도 반클리프 아펠이 찾아올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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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논나의 패션

 

아름다운 할머니, 밀라논나 Milanonna

 

챠오 아미치(친구)~ Ciao Amici~ 로 부드러우면서 여유롭게 인사하는 밀라논나 할머니를 아시나요?

랭자언니가 밀라논나 할머니를 처음 접한 건 알수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해 준 아래의 영상입니다.

 

밀라논나를 처음 알게된 영상

 

 

그 당시에도 이미 10만 구독자 감사영상을 올리셨으니 폭발적 관심의 크리에이터셨네요.

세월이 느껴지는 백발의 외모지만 그레이 스키니와 톤온톤의 심플한 셔츠를 입고 볼드한 장신구를 레이어링 한 세련된 할머니의 옷장공개 영상은 클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운영 약 10개월에 오늘 날짜로 이미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1백만이 넘었고, (가장 많은 영상은 350만 회에 달한다.) 현재는 구독자가 62.5만 명으로 반응 좋은 인기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아직도 구독전이시라면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밀라논나 유튜브 메인

 

 

밀라논나 할머니를 계속 구독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밀라논나 할머니는 시대를 초월하는 패션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삶을 대하는 여유로운 자세까지. 새로운 문화 주체자로 떠오른 오팔 세대의 대표주자로 과히 인생의 롤모델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수집한 밀라논나 할머니의 정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변화하고 싶다."
"본인이 명품이면 되거든요."

밀라논나 Milanonna (본명 ; 장명숙)

출생 1952년생

국적 대한민국

종교 가톨릭 (안젤라 메리치)

학력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

가족 남편, 2남

40년째 패션계에 몸담고 계신 대선배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니다.'(2009)의 저자 -절판되었다가 2020년 1월 새로 출간

'밀라노'+'논나'(할머니라는 이탈리아어)를 합친 작명

키 161.3cm이셨는데 현재는 158cm 정도

평범하게 살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으로 결혼을 하였지만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사는 삶의 갈증을 느껴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 간 최초의 한국인 (부부가 함께 유학)

살바토레 페라가모, 막스마라, 겟유즈드 등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1990년대 한국에 론칭한 장본인

밀라노와 한국을 오가며 살고 계시지만 최근엔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머무시는 중

밀라논나의 재능과 여유로운 노년생활을 아까워한 후배의 권유로 유튜브 시작 (2019년 10월 7일)

2019년 10월 10일 자신의 소개 영상과 '60대 명품 바이어가 고른 자라 ZARA 꿀템' 영상 업로드.

 

 

 

 

 

 

밀라논나 할머니의 영상을 보고 있자면 패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왠지 차분하게 힐링이 되는 기분입니다. 최근에는 '90년대생이 무서워요' '직장상사가 폭언을 해요' '논나의 Q&A' 등의 어린 아미치들부터 성인 아마치들과도 활발하게 소통중입니다.

 

 

밀라논나 인스타그램 @mila_no_nna

밀라논나 할머니는 인스타도 운영 중이신데 일상이나 OOTD 등을 볼 수 있으니 유튜브 구독을 하셨다면 인스타도 꼭 방문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강한 바람을 가진 필자는 예전부터 블랙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죽을 때까지 나의 색을 유지하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는데, 밀라논나 할머니는 이런 나에게 깊은 영감과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밀라논나 할머니가 제 글을 보시게 될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지금 모습 그대로 건강 잘 챙기며 곁에 계셔주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활약도 꾸준히 지켜보는 아미치가 될게요. 

 

아름다운 나의 할머니 '밀라논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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