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숱, 속눈썹숱, 머리숱이 고민이라면 피마자오일을 발라보자!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고민하는 문제 중에 하나가 각종 '숱'입니다.

눈썹숱이 적어 옅은 눈썹이 고민이기도 하고, 잦은 속눈썹 연장 시술로 빠져버리거나 약해진 속눈썹숱도 고민이고, 탈모나 적은 머리숱말고 풍성한 머리숱을 갖기를 원합니다. 눈썹 타투나 속눈썹 영양제 등의 다양한 시술과 제품으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구할수 있는 천연오일 '아주까리' 혹은 '피마자' 오일(CASTOR OIL)이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놀라운 효능을 알고 계셨습니까? 

현존하는 최고의 치료제 '피미자오일'을 소개합니다.





Castor Oil (피마자오일)



피마자오일만 꾸준히 발라주면 인형같은 속눈썹과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질수 있기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미 핫한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마자라고 불리는 아주까리의 열매는 동그랗고 겉면에는 가시가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씨가 들어 있습니다. 이 3개의 씨를 짜낸것이 바로 피마자오일 입니다. 1년생초로 아프리카 원산이며 온대,열대에서 널리 가꾸는 식물입니다. 연한 노란색이며 독특한 향기를 풍기고 점도가 높아서 끈적한 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보관성도 좋습니다.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약 90%의 주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이 중성지방은 피부에 중요한 유분으로 알려져있고 주요 효능은 에너지대사 입니다. 체내의 불필요한 물질이나 독소를 배설하고, 체내순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키므로써 다양한 질병을 없애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마자오일의 활용은 수세기 전부터 이어졌으며, 우리의 조상님들도 옛날부터 비누나 팩에 피마자오일(아주까리기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크고 아름다운 잎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장식용 식물로 기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 중국 및 페르시아를 포함한 많은 고대 문명이 등불 연료나 항유, 연고의 재료 등 다양한 용도로 피마자의 가치를 높이 인정했습니다. 



감기와 특히 변비에 좋은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피마자오일이 각종 모발 문제를 해결 해 주는 천연치료제로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피마자오일에 오메가-9 지방산과 리놀렌산이 풍부하여 머리카락 성장을 방해하는 각종 세균과 곰팡이 균들을 억제하고 탈모의 요인이 되는 모낭염이나 각종 두피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이 오일을 사용하고 탈모가 예방되는것은 물론이거니와 건강하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나는 신비한 경험을 한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피마자 오일로 각종 모발 문제를 해결하는 사용방법을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1. 속눈썹


헥산(Hexane)이 포함되지 않은 저온 압착법으로 추출된 피마자 기름을 저녁 세안후 면봉이나 손가락을 이용하여 소량 발라줍니다. 

사용이 끝난 마스카라를 닦아 브러쉬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원한다면 매일밤 꾸준히 반복하여 발라야 합니다. 

오일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 하셔야 하며 임산부는 사용하지 않도록 합니다.




2. 눈썹


속눈썹과 마찬가지로 저녁 세안후에 면봉에 오일을 살짝 묻혀 발라주면 2~3일만 해도 숱도 많아지고 두껍고 색이 진해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헤어


피마자오일 1큰술 분량을 두피에 직접 발라 도포하고 캡을 쓰고 밤새 둔뒤, 아침에 행궈줍니다. 컨디셔닝과 모이스처라이징 효과로 갈라진 모발도 두껍고 건강하게 해주며 증모는 물론이며 피마자오일이 영양성분과 결합하여 무발의 수분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발을 어둡게 많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항균작용이 있기때문에 두피 감염과 가려움증을 예방합니다. 코코넛 오일이나 아몬드 오일과 혼합하여 사용해도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피마자오일의 유용한 효능을 소개합니다.


사마귀 제거 - 베이킹 소다와 피마자오일을 섞어서 아침 저녁으로 발라주면 서서히 떨어집니다.

굳은살 제거 - 피마자오일을 적신 헝겊을 굳은살 부위(발뒤꿈치)에 놓으면 굳은살 제거에 수월합니다.

피부미용 - 피마자오일의 지방산이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고 수분 증발을 막아줍니다. 소량으로도 충분합니다. 파마자 오일은 점도가 강한 무거운 오일이므로 피부에 남을 수 있으니 낮에 사용하는 화장품에 첨가 하는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변비해소 - 피마자오일을 경구 섭취하면 2~5시간내로 소화 기관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만2~12세는 1~2티스푼, 성인은 1~2큰 술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관절염 - 피마자오일을 관절위에 바르고 마사지 해 줍니다.

           오일내의 리시놀산이 세포노폐물을 혈류로 가져간 뒤 제거하는 기능을 갖는 림프계 충혈 완화 효과가 있습니다.

근육통 - 강한 운동뒤 피마자오일을 근육에 바르면 혈액순환과 붓기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반려동물 치료제 - 개나 고양이의 피부의 상처나 항 미생물속성 및 항염효과가 있으므로 환부에 조금씩 뿌려줍니다. 

                        반려동물이 핥을 경우 무해하긴 하지만 설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벌에 쏘였을때 - 솜에 피마자오일을 묻혀 환부에 발라주면 통증과 독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습니다.

흉터자국 완화 - 효과는 천천히 나타나긴 하지만 파마자 오일의 지방산이 상처 조직 깊숙히 스며들어 건강한 조직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튼살 주변을 정기적으로 마사지하면 좋습니다. (임신중이나 급격히 살이 찐 경우 삼가하시길 바랍니다.)

백선치료 - 2티스푼의 오일을 4티스푼 코코넛 오일에 희석하여 감염부위에 바르고 따뜻하게 오래도록 유지할수록 효과가 좋으면 완치가 될때까지 반복합니다. 피마자오일의 운데실렌산 성분이 백선에 도움을 줍니다.

여드름치료 - 피마자오일의 리시놀산 곰팡이, 박테리아균에 효과적이므로 여드름에 좋습니다. 

주름살제어 - 높은 지방산이 피부에 쉽게 침투하여 피부를 젋고 부드럽게 해주며 노화되 주름살 제어에도 효과적입니다.

갈라진 손톱 - 적은 양의 오일로도 갈라진 손톱이나 큐티클에 마사지 해주면 2~3달 후 달라진 손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의사항


모든 허브 오일과 마찬가지로 잠재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넓은 부위에 사용하기 전에 피부테스트로 알러지 반응을 해 보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섭취하는 경우 피마자 오일의 리시놀산이 장 내벽에 자극제로 작용하여 변비를 완화시키기 때문에 위장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며 현기증이나 메스꺼움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주요 부작용은 피로, 메스꺼움, 구토 및 설사 입니다. 따라서 장 증후군,궤양,경련, 또는 게실염, 대장염, 치질이 있는 분은 피마자오일의 경구섭취를 삼가하시길 권합니다. 또한 최근 수술을 하신경우도 사용을 금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내장과 자궁을 수축시켜 출산을 자극하는 출산자극제가 될 수 있으니 극도의 주의를 요합니다.

핵산이나 다른 화학 오염물질에 노출되어 있을 수 있으니 믿을 수 있는 출처의 유기농 피마자 기름을 구입할 것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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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렌징, 제대로 하는 방법



매일 하는 세안, 어떻게들 하고 계십니까? 

그냥 클렌징 폼이나 오일로 열심히 얼굴을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고 끝내진 않으십니까?

세수하는 일이야 유치원 시절부터 매일 해오던 일이니 올바른 방법을 알고 제대로 배워서 하는 사람보다 몸에 벤 습관대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클렌징이라는 것이 단순히 메이크업을 지우는 일로 여겨 중요성이 간과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클렌징은 눈에 보이는 메이크업은 물론이고 피부속의 보이지 않는 노폐물을 제거해 주며 각종 자극으로 지쳐있는 피부를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원인의 피부트러블로 고민하는 분들이 기초제품이나 기능성제품들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클렌징만 제대로 해도 피부톤을 비롯한 눈에 보이는 피부변화를 느낄수 있습니다. 하루 클렌징 하지 않고 잠들면 5일씩 더 빨리 늙는다고 합니다. 비싼 제품들, 트러블을 가리기 위한 커버 메이크업, 시술을 알아보기 이전에 오늘은 냉정하게 자신의 클렌징 습관을 짚어보고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상식과 놓치기 쉬운 클렌징에 대한 모든것을 알아보겠습니다.





클렌징 전 손씻기는 기본입니다.


클렌징의 시작과 끝은 손에서 이루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손의 사용이 어느정도이며 어느정도의 때가 묻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없이 잘 알고 있으실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능이 좋은 클렌져를 사용한다고해도 노폐물이 가득한 손에 묻혀 문지른다면 제거는 커녕 오히려 피부로 옮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손톱은 물론 손목까지 클렌징전에 깨끗하게 씻고 클렌징을 시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따뜻한 물로 시작한다.


타이트한 모공관리를 위해서 클렌징은 차가운 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차가운 물이 피부 탄력과 모공 타이트닝에 도움이 되는건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차가운 물을 사용하면 노폐물이 낀 모공이 열리지 않습니다. 피지제거에 차가운 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뜨거운 물이 아닌 따뜻한 정도의 미온수로 모공을 먼저 열어주고 클렌징을 시작합니다. (차가운 물은 클렌징 마무리 단계에 사용) 지성 피부라면 따뜻한 물을 30번 이상 끼얹어 피부 표면의 피지를 녹이고 모공을 열어주도록합니다.



포인트 메이크업 지울때는 전용리무버를 사용한다.


립스틱이나 아이메이크업을 지울때는 전용리무버와 화장솜을 사용해야합니다. 다른 부위에 비해 눈가와 입가는 피지선의 분포가 50% 이하인 예민하고 자극받기 쉬운 부위인데 메이크업 중에서 가장 강렬한 제품을 사용하는 포인트 메이크업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반 클렌징 제품으로 포인트 메이크업을 깔끔하게 지우기 어려울 뿐더러 세정능력이 강한 클렌저는 보습막을 제거하여 건조와 각질을 유발할 수 있다. 화장솜에 리무버를 충분히 묻혀 해당 부분에 얹고 잠시 기다립니다. 30초가량 흐르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살살 닦아냅니다. 아이라인부분은 면봉을 사용해 속눈썹 사이의 미세부위까지 닦아냅니다.



클렌징 오일은 유화 과정을 거친다.


클렌징 오일을 마른손에서 먼저 롤링한 뒤 물을 살짝 적셔 다시 롤링하면 물과 기름이 섞이면서 투명한 오일이 우유빛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유화과정입니다. 클렌징 오일은 유화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유화과정을 거친 뒤 세안해 주어야 물이 모공속으로 들어가 물보다 가벼운 오일을 모공 밖으로 밀어내면서 오일에 섞여 씻겨 나가게 됩니다. 이 유화과정을 모르고 생략 한 뒤 오일 자체를 바로 세안에 사용하여 클렌징이 끝난 후에도 피부에 오일 잔여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럴경우 피부 트러블까지 유발하기도 하니 잊지말고 유화과정을 거치도록 합시다.



클렌징 폼도 너무 오래 문지르지 않는다.


아무리 폼이라도 지속적인 압력으로 오랜시간 문지르면 좋지 않습니다. 오래 문지른다고 세정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을 물로 한번 씻고 클렌징 폼을 손에 짜서 얼굴위에서 바로 롤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을땐 얼굴위에서의 과도한 롤링이 오히려 먼지가 피부에 자극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에서 먼저 미세한 거품이 될 때까지 롤링한 뒤 짧은시간동안 메이크업을 녹여 닦아내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뽀드득 소리는 위험신호다.


클렌징 후에 뽀드득 소리가 나야지만 깨끗하고 완벽하게 씻겼다고 만족하십니까??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려면 피부의 천연 피지막이 필요한데, 과도하게 세안을 하면 남겨져 있어야 할 피지막 까지 함께 제거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호막이나 보습 성분까지 모두 씻겨나가 오히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하니 뽀드득 소리는 더이상 반가운 소리가 아닌 위험한 소리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목도 얼굴처럼 클렌징 한다.


목피부는 눈가처럼 피부가 얇고 피지선이 적습니다. 목을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곤 합니다. 메이크업 할때 경계선을 만들지 않기 위해 턱밑과 목까지 이어지게 베이스 메이크업을 하기도 하는데 목에도 얼굴에 사용하는 모든 클렌징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디워시로 메이크업까지 녹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목주름 사이에 얼굴처럼 노폐물이 끼면 주름이 더욱 깊어 질수 있으니 관리해 주어야 합니다.



진동클렌저는 일주일에 2회, 알갱이가 있는 클렌저는 조심


진동클렌저를 구매한 분들이 많아지면서 세안할 때마다 진동클렌저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역시 과도한 클렌징으로 피부 장벽이 손상 되고 꼭 필요한 지질 성분까지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2회 정도로 진동클렌저 사용을 제한하고, 알갱이가 포함된 클렌저는 각질 제거에 도움이 되지만 민감하고 예민한 피부에는 오히려 자극이 되어 독이 될수 있으니 주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 보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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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 

요즘 패션계 대세중의 대세는 바로 구찌.


주춤하던 구찌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엄청난 크리에이트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

그가 사실 무명 디자이너 였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유명 디자이너가 대형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되는게 최근의 일반적인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발탁한 구찌의 한수도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감각도 모든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사진출처:보그]



알렉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 


1972년 이탈리아 로마 출생

Academia di Costume e di Moda 졸업

레코팽 니트디자이너 3년 

팬디 시니어 악세서리 디자이너 3년

2002년 구찌 입사 





과거 구찌의 톰포드 시절 프리다 지아니니와 함께 내부에서 지아니니의 오른팔로 일하며 악세서리 디자인을 하며 조용히 12년을 보냈다. 톰포드가 떠나고 프리아 지아니니가 구찌를 맡은후 톰포드의 빈자리를 채우며 매출을 40%이상 성장시켰다. 하지만 참신한 디자이너들의 변화들 속에서 약간은 보수적이고 클래식함을 유지해 나가던 구찌는 조금식 식상한 브랜드가 되어가며 경기침체와 중국시장 변화등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프리아 지아니니는 컬렉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즌 중에 구찌에서 물러나게 된다. 수장이 물러나면 함께 일하던 팀이 자연스럽게 해체되기 마련이었던 분위기속에 알렉산드로 미켈레도 자연스럽게 구찌를 퇴사 할 계획이었다. 2015년 1월 구찌에 새로운 CEO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미켈레의 집을 찾아왔다.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이미 구찌를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4시간동안 마르코 비자리와 커피를 마시며 모든것을 오픈한채로 정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면접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대화가 끝나고 미켈레는 런던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는데 몇일 뒤 마르코 비자리가 일주일안에 패션쇼를 준비할수 있겠냐며 전화를 걸어 왔다고 한다. 비자리의 제의에 놀랐지만 미켈레는 짧은 일주일 만에 구찌의 새 남성복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3일간 같은 점퍼를 입고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할 정도의 미친 상태로 다른 부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컬렉션을 준비했다고 회고했다. 컬렉션을 선보인지 이틀 뒤, 구찌의 모회사 커링 그룹은 그를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적으로 임명했다. 메인 디자이너된 해에는 인터내셔널 디자이너 어워드를 수상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패션 평론가 로빈 기브한은 '큰 의미의 자유와 다양성이 담겨있는 컬렉션이자 모든 아이템이 크로스 코디가 가능한 자유로운 패션이다.'라고 평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빈티지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패턴과 프린트의 믹스, 절충주의, 자유분방한 디자인 미학을 보이며 그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의 화려함'과 '모든것이 가능한 규칙없는 아이디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로마에 있는 미켈레 자신의 집에는 아름다운 옛날 그림들, 원단조각, 보석, 신발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처럼 가득하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어느날 자신이 복잡한 일정속에 스스로도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순간순간을 살도록 정해진 운명이라 믿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룩이 컨템포러리하게 보인다고 믿고있다. 그의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보면 그만의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성 정체성과 젠더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사람)를 추구하고 있음 느낄 수 있다. 파격적인 컬러들을 사용하면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허문 젠더리스룩을 보여준다. 디자인 역시도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과장된 리본을 남성복에 사용하거나 여성복에 슈트를 내세우기도한다. 미켈리는 버버리처럼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통합해 한 무대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패션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은 머스큘린과 페미닌 사이의 통합보다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종류를 찾는 것에 집중한다. 


"나는 젠더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의 관점에서 패션을 시작했다. 아름다움은 마치 당신이 아름다운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과 같다.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당신이 아름다움에 손을 내밀기 시도한다면 그것은 진짜 위험하다. 아름다움은 일종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히피같은 삶을 살았다던 그의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그의 컬렉션에는 그만의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2016년부터 '알렉산드로 미켈레 효과' 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그의 빈티지클래식 무드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스네이크 로퍼와 블로퍼 등 빈티지하고 복고적인 컨셉과 뱀, 벌 등의 자수를 놓은 아이템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구찌는 기존 고객층 부터 젊은 패션피플들의 마음도 사로잡으며 매출 역시 상승가도 중이다. 위기의 구찌를 새로운 부활로 이끈 영웅인 셈이다.



또한 믿기 어렵겠지만 화려한 악세서리를 강조하는 구찌에서 그는 판매개념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마켓은 제품으로 넘쳐났다. 패션은 제품이 전부가 아니다. 패션은 당신이 입어보고, 그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져 결국 제품을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놀라운 아이디어가 핵심이다. 따라서 당신은 그 아이디어를 산 것이지 물건을 구입한 것이 아니다'"



절제가 가득했던 기존의 구찌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듯했던 꽃, 나비, 새, 도마뱀, 잠자리들을 요란한듯 옷과 가방에 자수를 놓은 그의 디자인은 마치 할머니 옷장 깊숙하게 잠자던 옷처럼 촌스러운듯 요란했지만 그의 디자인은 따뜻한 자연미를 살린 빈티지 미학이다. 획일화되고 차가운 도시에 지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 그의 디자인은 구찌의 정통성과 가치를 오랜기간 묵묵히 이해하고 지내왔던 무명의 시간들과의 그의 감성콜라보레이션의 성공적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는 그의 빈티지함과 오리엔탈 무드가 가득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치파오나 기모노를 연상시키거나 동양화가 구찌 위를 수놓았다. 용이나 호랑이등의 동양적인 동물이나 디즈니의 도널드 덕처럼 친숙한 캐릭터를 곳곳에서 볼수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역시 가장많은 #ootd (Outit of the day) 는 구찌가 차지하지 않을까? 





[참고] 패션엔 2016.06.02



요새 정말 제대로 미친 구찌(Gucci) - 마케팅 & 캠페인 편





구찌의 역사편에 이은 구찌이야기 두번째. 오늘은 구찌의 광고 마케팅과 캠페인을 소개하려한다.

저명한 명품 브랜드라면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치열하고 냉정한 패션계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잠시 주춤했던 구찌의 주가가 다시 상승한 요인이 그저 '예뻐서'인 기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 외 다양한 활동이 뒷바침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찌의 광고



구찌의 설립자인 '구찌오구찌'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처음 매장을 오픈한 다음해인 1922년에 상류층의 패션과 이탈리아 장인의 기술이 합쳐진 가죽 전문점이 탄생했음을 지면을 통해 알린것이 구찌의 첫 광고였다. 1950년대~1960년대에는 현재의 공항패션 처럼 공항에서 유명인사들이 구찌의 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이나 로마의 구찌매장을 방문하는 모습이 자주 보도되면서 구찌의 대중적 선호도는 높아졌다. 특히, 1950년대 '그레이스 켈리'가 로마 콘도티 거리의 구찌매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녀를 보기 위해서 구찌 매장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 사진으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사람들에게 각인 되어졌고, 뿐만아니라 로마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로마의 명소가 되었다. 이때 이러한 구찌 매장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하여 이탈리아 거리를 배경으로 제품 사진을 찍고 로마와 피렌체같이 구찌 매장이 있는 곳의 이탈리아 지역명을 표시하는 방식의 지면광고를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1980년대를 지나면서 최상급 품질의 여행가방을 파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 구찌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신 중산층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이런 구찌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양손에 여행가방을 들고 있는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구찌 크래스트(CREST) 로고를 선보였다. 


구찌의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톰포드'가 있던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전통적인 가죽브랜드에서 세계에서 가장 관능적인브랜드로 각인시키게 된 강력한 수단으로 광고가 이용되었다. 톰포드는 동성애,삼각관계 등을 광고에 이용하는 패션과 성적코드를 결합한 이른바 '포르노 시크(Porno Chic)'의 창시자이다. 프랑스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카린 로이펠드',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와 함께 작업하면서 관능적인 비주얼을 고급스럽게 풀어냈다. 스타일리스트이자 에디터였던 '카린 로이펠드'는 "패션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톰포드 이전과 톰포드 이후로 나뉜다. 그는 마케팅의 힘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최초의 디자이너."라고 말하며 그를 인정했다.


TV를 통해 처음 선보였던 광고는 2007년 두번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만든 구찌의 첫번째 향수 구찌바이구찌 뿌르 옴므 였다. 감독 '데이비드 린치' 와 영화배우 '제임스 프랭코'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창립 90주년을 맞은 2011년에는 흑백사진으로 1950년대의 구찌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의 모습을 광고에 사용하면서 구찌의 전통을 과시했다. 


최근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파격적인 행보로 구찌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따뜻한 자연미를 살린 빈티지한 스타일로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였고 그에 맞추어 식물원 컨셉의 광고를 선보였다. 유리 돔 형태의 식물원에서 각종 야생 식물과 거닐고 있는 플라밍고 (홍학류 새), 다채로운 패턴의 러그, 수북하게 쌓인 고서를 배경으로 촬영하였다. 생기발랄한 모델들은 호기심과 자유, 젊음,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구찌의 캠페인



2004년 구찌는 유니세프와 파트너십을 맺어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힘쓰고 있으며, 2009년에는 9월 16일을 'GUCCI For FFANWN Day' 로 지정하여 이날 수익의 10%를 현대여성진흥기금(FFAWN, 여성들의 자립과 성공을 돕는 기금단체)에 기부하는 칵테일 파티를 개최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2010년 부터 환경과 이웃을 배려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전 세계 구찌 직영매장에서 '에코 프렌들리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쇼핑백과 포장 박스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가능한 인증용지를 사용했으며 반짝이는 겉면표현을 위해 플라스틱 코팅을 사용하는것을 일절 제한하기도 하였다. 리본,가먼트 백(백,슈트,슈즈 등을 구입할 때 브랜드에서 함께 제공하는 천으로 이루어진 된 덮개)도 폴리에스테르에서 코튼 소재로 변경했다. 그 외에도 업무 시간 이후 소등하기, 빛 감지기 설치 등 매장에서 시행 가능한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면서 35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감소시키고 1400톤의 종이 소비를 감소시켰으며 10,000톤의 Co2 배출을 감소시키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구찌의 전CEO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오늘날 단지 제품과 서비스 뿐 아니라 커뮤니티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또 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대해 평가받고 있다."고 말하며 구찌는 2004년 부터 자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이를 통해 경영 윤리, 인권존중, 환경. 근로자들의 안전,건강,권리 등을 공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2013년 구찌는 전 세계 여성과 여자 어린이의 교육,건강,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해결을 위하여 글로벌 캠페인인 '차임 포 체인지 CHIME FOR CHAGE : CFC)를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구찌의 모기업인 케링의 CEO '프랑수아 앙리 피노'의 부인이자 배우인  '셀마 헤이엑 피노'와 '프리다 지아니니' 그리고 팝가수 '비욘세 놀즈 카터'가 공동으로 창설하였고 우리나라 배우 이영애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CFC 자문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CFC와 '글로벌시티즌'과의 파트너십으로 포메이션 월드투어를 진행하여 전세계 남녀평등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구찌는 한국의 문화유산 보존 사업을 위하여 한국네셔널트러스트에 5년간 총 5억원을 후원하기로 하였다. 2013년 한국네셔널트러스트는 구찌와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나의사랑 문화유산' 캠페인을 발족하여 시민들이 직접 유실 위험에 처하거나 문화적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찾아 소개하고 보존하게 하였다.






구찌의 문화 마케팅



현재 구찌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기획으로 구찌이 글로벌 디지털 프로젝트인 #구찌그램(Guccigram) 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작품을 인스타그램등의 SNS에 공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번째 주제였던 구찌 블룸(Gucci Blooms)과 구찌 칼레이도(Gucci Caleido)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을 공개했다. 2016년의 프로젝트 주제는 구찌의 SS컬렉션 티엔(Tian)의 프린팅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티엔(Tian)은 중국어로 하늘,천상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기본으로 10세기의 중국 화조화 화법의 세련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중국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을 포함 아시아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작품들은 구찌의 마이크로사이트 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찌는 이밖에도 다양한 작가들이나 인플루언서 (Influencer: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섭외하여 다양하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사 신발인 '에이스 스니커즈'를 알리기 위해서 젋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노출했다. 이 신발을 신고 롱보드를 타는 한국의 '롱보드여신' 고효주 씨와 노르웨이 스냅쳇스타 '지오스냅' 그리고 브라질 스트릿 아티스트 '아난다 나후' 등과 협력해 제작


이 외에도 구찌는 일본 구찌 런칭 50주년과 탄생 40주년을 맞이한 헬로키티를 기념하여 재미있는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하고, 꼼데가르송과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로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구찌는 단순히 구색에 맞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제대로된 모바일 마케팅을 진행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구찌의 어플리케이션 '구찌의 세계'를 통해 구찌의 신제품, 뉴스, 매장정보, 뮤직비디오, 패션쇼 영상등을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다수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뮤직프로듀서인 '마크론슨'이 제작한 '구찌비트'를 통해 음악 믹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구찌 음악 채널'을 통해 구찌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곡들을 시즌별로 보여주고 있다. 






구찌는 단순히 제품 홍보 뿐만 아니라 구찌만의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고정된 브랜드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더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소통하는 마케팅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캠페인을 보여주고 있는 구찌의 미래는 여전히 기대로 가득차 있다. 수많은 명품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환생에 성공한 브랜드라 인정받고 있는 구찌의 인기는 어쩌면 이미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네이버 세계브랜드백과

비즈조선 [럭셔리인사이트] 18년만에 최고 주가 기록한 구찌의 성공 비결 3가지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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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바삭.

가만히 있어도 메마르는 피부. 메마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냥 몸이 말랐으면 좋겠건만 참 내맘같지 않다. 난방기기를 많이 쓰는 겨울이면 정말 수저로 몸안에 수분을 푹푹 떠가는 느낌이다. 화장실 다녀와서 물과 핸드워시로 손을 닦은 후 바로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고 잠시만 있다보면 마치 모레를 만지고온듯 푸석해지는 느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게 되는 겨울은 (온수로 장시간 샤워하는 것은 피부 보습에 좋지않다. 이전 포스팅 참고)물론 필자는 겨울 뿐아니라 4계절 바디 로션, 크림을 달고산다. 보습효과는 기본이고, 무향보다는 발랐다는 것이 인식될 정도의 향을 풍기는 제품을 선호하다보니, 좋은 향을 가진 바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다.  가끔 '너한테서는 좋은 냄새가 나'라는 칭찬의 말을 들었을때는 '역시 바디크림 쓰길 잘했어'하고 미소 지어진다. 향수를 뿌린 것처럼 강력한 한방은 부족하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살냄새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향수 대신 '퍼퓸바디로션'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불화장품 수석 연구원이자 <향수 그리고 향기>의 저자 임원철님은 " 향수는 대부분 향이 잘 휘발되는 에탄올에 희석된 반면, 보디로션은 끈적끈적한 점도를 지니죠. 향수와 달리 휘발되지 않은 오일이나 왁스로 이루어진 제형에 갇혀 있기 때문에 향수만큼 향이 멀리 퍼지진 않아요. 그래서 향수의 톱 노트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상큼한 맛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향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져나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체취처럼 말이죠." 라고 바디로션에 대해 설명했다. 








얼마전 마리끌레르 매거진에서 정말 좋은 정보가 실려서 참고로 가져와 봤다.

향이 좋은 바디제품에 대한 정보를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출처:보그 매거진]


스타들이 향수보다 사랑하는 보디 크림 편 [마리끌레르 11.2016]





>김새롬 's PICK


Biotherm 오 비타미네 바디밀크 200ml (45,000원)


모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이 반하는 나만의 특별한 보디 로션이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방송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 했었죠! 상큼한 레몬과 자몽향이 특징이에요.







>소녀시대 태연&티파티 's PICK


Bath & Body Works 핑크쉬폰 바디 로션 236ml (9,800원)


배스 앤 바디 웍스에는 다양한 향의 보디 로션이 있는데, 이중 태연과 티파니가 사용하는 향은 핑크 쉬폰이에요. 달콤한 딸기향으로 소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죠. 은은하게 코코넛과 복숭아 향기가 맴돌아 여운이 남아요. 소녀시대 외에도 방탄소년단 정국과 인피니트의 성규도 애요하는 브랜드라죠.










위의 제품들 중에 특히 로라메르시에 바디크림은 착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향이 짙고 오래가기로 유명하다. 지속력이 뛰어나니 필자처럼 오래가는 살냄새를 원한다면 추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향이 변한다는 반응도 많으니 비싸다고 아끼지 말고 치덕치덕 열심히 많이 바르는 것이 그냥 버리게 되는것 보다 나으니 참고. 





보그 매거진에 소문난 퍼퓸 보디로션 베스트셀러 30여개에 대해 임원철 조향사와 함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그 중 살아남은 19개의 제품의 솔직 담백한 품평이 소개되어 가져왔다. [참고 VOGUE 09.2015 보디로션의 신세계]


에디션 드 퍼품 프레데릭 말 '엉 빠썽 바디 밀크' 200g 25만5천원

오렌즈 블로섬, 혹은 네롤리 향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테스트한 제품을 통틀어 최고로 마음에 든 제품이다.


에스티 로더 '모던 뮤즈 바디로션' 200ml 7만원

이국적인 무화과 열매, 지중해 바다, 산뜻하고 투명한 꽃 향이 어우러진 여성스러운 향이 압권.


에르메스 '자르뎅 무슈 리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 200ml 6만6천원

친숙하고 달콤한 우유나 과일, 그리고 샌들우드 향이 어우러진 바디로션의 신세계!


시슬리 '오 뒤 스와르 끄렘므 빠르퓌메 이드라땅뜨' 150ml 12만2천원

잔가지의 나무 향과 녹색 수풀 느낌의 바질 향, 상큼한 라임 향의 앙상블.


아쿠아 디 파르마 '베르가모트 디 칼라브리아 바디로션' 

칼라브리아의 베르가모트 향이 느껴지는, 지중해 푸른 바다의 향기.


딥디크 '오 로즈 바디로션' 200ml 6만8천원

장미 향보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을때 피부에서 날 법한, 그런 짭조름한 잔향이 매력적이다.


조 말론 런던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바디 앤드 핸드 로션' 250ml 8만6천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통나무 집으로 떠난 가족 여행', 꽃 향과 굵은 줄기의 나무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바이레도 '발 다프리크 바디크림' 200ml 9만1천원

울이나 면 소재의 따뜻하고 포근한 향. 가을이나 겨울에 특히 잘 어울릴 듯!


밀러 해리스 '시트롱 시트롱' 50ml 15만7천원

물에 젖은 나무와 덤불, 순수한 대자연 속에서 날 법한 천연의 향.


아틀리에 코롱 '포멜로 파라디 바디로션' 265ml 8만4천원

핑크 자몽 향이 나는데 살짝 단조롭다. 자칫 샤워 젤이나 방향제 같은 가벼운 잔향에 실망할지도.


러쉬 '카마 크림' 225g 4만1700원 (일명:이효리크림)

YSL 뷰티의 향수 '오피움' 광고가 생각나는,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모으시춰라이징 바디로션' 200ml 8만원

달콤한 바닐라 느낌이 많은, 그래서 자칫 셀러브리티 향수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아카카파 '화이트 모스 바디로션' 300ml 6만9천원

세탁이 덜 끝난 옷을 입은듯한 기분? 꿉꿉하다기 보다 보송보송한 느낌에 가깝다.


보테가 베네타 '놋 퍼퓸드 바디로션' 200ml 8만원

모두가 좋아할 깔끔한 비누 향.


톰 포드 뷰티 '쟈스민 루쥬 바디 모이스춰라이저' 150ml 9만5천원

재스민 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 이상의 매력은 글쎄.


디올 '어딕트 퍼퓸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 밀크' 200ml 8만원

수련이나 사과의 시원한 향, 잘 만든 화장품 바를 때의 느낌.


필로소피 '어메이징 그레이스 퍼밍 바디 에멀전' 480ml 4만9천원

풍만한 볼륨이 느껴지는 향기.


로라 메르시에 '수플레 바디크림' 340g 8만3천원

과자 냄새가 난다. 자칫하면 유아용 제품을 바른 듯 유치한 분위기를 자아낼지도 모르겠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라떼 뻬르 일 꼬르뽀' 250ml 15만1천원

기분 좋은 허브 향이 코끝을 맴돈다.









자꾸만 코를 대고 맡고 싶고 자꾸만 바르고 싶은 향이 좋은 바디제품. 건조함 없이 촉촉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위한 영양공급과

샤워후 바디 제품을 바르면서 좋은 향기와 함께 스트레스를 풀며 나만의 아름다운 힐링 타임을 보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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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6년 1월 26일 JYP는 원더걸스가 해체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JYP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지난 10년 간 항상 함께 해 왔던 원더걸스의 해체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멤버들 간에 또, 회사와 여러가지 의견을 나누고 의논을 한 결과 그룹 원더걸스는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멤버 중 유빈과 혜림은 저희 JYP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향후 음악,연기,MC 등 다방면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또한, 예은과 선미는 많은 고민 끝에 스스로의 길을 새로 개척하고자 아쉽지만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멤버들은 지난 10년 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봐 주셨던 팬 분들께 감사 인사의 의미로 


데뷔 10주년인 2월 10일에 마지막 디지털 싱글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저희 JYP 엔터테인먼트와 원더걸스 멤버들은 모두 지난 10년 간의 원더걸스의 대장정에 함께 해 주셨던 전세계의 팬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떠나는 멤버와 남은 멤버 모두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서로 돕고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onder Girls




원더걸스는 JYP 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으로 선예, 현아, 소희, 예은, 선미가 '아이러니(Irony)'란 곡에 걸리쉬하고 풋풋한 컨셉으로 2007년 데뷔했다. 초기에 선예를 중심으로 현아,소희,선미 4인조로 준비하다가 데뷔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예은을 합류시켜 5인조가 되었다고 한다. 데뷔후 약 1년여의 기간동안 <Tell me>, <So hot>, <No body>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걸그룹이 침체기를 겪고 있을때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걸그룹으로서 압도적 전성기를 누렸다. <Tell me> 발표 직전 현아가 탈퇴하고 유빈이 새로 영입되었다. 2000년대 중반 발라드 위주였던 가요계에 후크송과 포인트안무,복고풍 등의 새로운 트렌트를 몰고왔다. 특히 원더걸스 전설의 시작이 되었던 <Tell me>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중독성 있는 가사와 안무로 발표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걸그룹 노래 중 '멜론 차트 Top10에 최장기간 진입'의 기록은 이를 증명한다. <Tell me>가 17주 1위,<Nobody>는 16주 2위,<So hot>이 14주 3위로 일명 텔쏘노 라인으로 명실상부한 메가히트곡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가장 큰 인기를 누릴때 미국 진출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 사이 경쟁구도의 걸그룹들의 노래들이 원더걸스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인기를 누렸고 국내에서 원더걸스의 입지는 점차 줄어갔다. 미국 진출의 꿈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0년 선미가 활동

중단을 발표했고, 새로운 멤버로 혜림이 투입되었다. 국내로 다시 돌아온 원더걸스는 <2 different tears>,<Be my baby>,<Like This> 등의 곡을 발표했으나 전성기 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2013년에는 리더였던 선예가 결혼을 발표하며 탈퇴하였고, 2015년 가장 인기 멤버였던 소희까지 연기자로 전향하며 원더걸스를 탈퇴했다. 



이때가 원더걸스의 위기 혹은 해체시기 일지 모른다는 우려와는 달리 원더걸스 활동을 중단했다가 솔로곡을 발표했던 선미가 재합류하여 팀을 재정비했다.  2015년 원더걸스는 3년만에 밴드그룹으로 색을 바꿔 REBOOT 앨범을 발표했다. 각 멤버들은 직접 작곡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원더걸스의 색깔을 구축해갔다.  이 앨범 타이틀곡 <I Feel you>의 멤버 개인 티저 조회수가 50만을 넘었으며, 제일 먼저 나왔던 선미의 티저는 100만뷰를 기록했다. 그 후 8월 3일 출시된 앨범은 2시간만에 각종 음원사이트를 올킬하기도 했다. <I feel you>는 세련된 디스코 템포 음악으로 80년대 후반 레트로 컨셉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앨범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박진영이 타이틀곡 제작에서 손을 뗀 2016년 싱글앨범 <Why so lonely>에서는 레게팝과 70년대 밴드 사운드, 팝 록 장르의 곡을 수록하는 등 복고의 메인컨셉을 유지하지만 현대적으로 곡을 소화해내는 그룹이 되었다. 모든 곡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우며 음악평론가들의 극찬까지 받았고, 가온차트 7월간 1위에 이어 3분기 1위까지 하면서 아직 원더걸스의 음악과 무대가 매력적임을 증명해 보이며 활동을 마무리 했다.



원더걸스는 일명 '삼촌팬'이라 불리는 가요계에 존재하지 않던 소비층을 TV와 음반매장으로 다시 이끈 걸그룹이며, 10대부터 20대는 물론 삼촌팬까지 코어 팬층으로 흡수했고 음악 자체는 어린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말그대로 남녀노소 에게 폭 넓게 사랑받았다. 원더걸스의 강력한 무기는 음원성적인데 데뷔부터 해체전까지 음방나 방송 점수가 나 걸그룹보다 떨어졌더라도 1위에 항상 후보에 오른 이유는 오로지 음원 성적 하나 때문이었다. 


 

원더걸스의 계약만료를 앞두고 나온 몇몇의 기사를 통해 원더걸스의 해체는 사실상 예측되어 왔었다. 만료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재계약 관련하여 멤버간 논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멤버 유빈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투병생활을 하시게 되어 유빈이 슬픔 속에서 간병을 하는 상황이 되었었고, 그 다음달인 12월 22일 결국 부친상을 겪으며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기획사들과 이미 접촉을 진행했던 다른 멤버들도 재계약에 관해 확답하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일부 멤버들이 다른 기획사랑 계약 관련하여 '접촉'을 했다는것은 'JYP를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지난 1월 12일  JYP 사옥에 걸린 원더걸스의 사진이 빠지고 신인 그룹의 포스터가 걸린 것이 확인됐다. 원더걸스의 사진이  JYP 사옥에서 사라진 것은 10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전원 재계약의 가능성이 낮은 것일지 모른다고 추측 되어왔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 하여 활동한 아이돌이 많았던 만큼 비슷한 시기에 재계약을 진행하는 아이돌이 많아지면서 최근 많은 그룹들이 기억속으로 남게되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올라 도전하고 좌절하고, 멤버교체와 변화를 두려워 하지않고 꾸준하게 10년을 지켜온 원더걸스를 다시 한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10년의 내공이 있는 멤버들이니 만큼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기대하며 그동안 고생한 원더걸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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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 밤이 더 긴 계절. 겨울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 외치며 겨울만 되면 침대나 전기장판 위에 누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왕 누워서 보내는 계절이라면 건조해지는 피부라도 관리하면서 보내보자.

낮 시간의 피부가 자외선이가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 활동을 한다면, 밤 시간의 피부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하고 활발한 세포 재생을 한다. 또한,밤에는 신진대사의 흐림이 빨라져 피부가 유효성분을 흡수하는 속도가 배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은 난방으로 인해 밤 12- 새벽4시 사이는 피부가 최고로 건조한 상태에 놓인다고 한다. 그러니 잠들기 전에 스킨케어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부터 나이트 케어를 도와줄 각종 정보를 풀어보려한다.







1. 샤워와 세안은 최대한 짧게 하자.


샤워와 세안은 하루 종일 외부 상황들로 말라있던 피부에 즉각적으로 수분을 공급해 주는데는 효과적이지만, 뜨거운 물과 증기가 피부표면의 더러움 뿐 아니라 천연 보습막까지 녹여버리니 주의 해야한다. 특히나 최악은 40도 이상의 뜨거운 물로 긴 샤워를 하다가 마지막에 거품(폼클렌저,비누)세안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피부의 건조를 더욱 심화시킨다.

피부를 뽀드득 소리가 날때까지 씻거나 때를 자주 미는 것도 수분 손실이 높을 수 밖에 없으니 금물이다. 피부에 쌓인 각질을 제거 하겠다고 필링이나 스크럽을 주기로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세안은 피부 방어막에 손상을 주고, 손상된 피부방어막은 건조와 잔주름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겨울에 너무 뜨겁지 않은 물로 최대한 짧은시간에 마치고 피부 자극이 덜한 클렌징 제품을 사용하자. 무작정 청결하게 하겠다고 오랜시간 씻어내는건 오히려 역효과이다. 참고로 아침 세안은 물로만 하도록 하자. 물로만 씻으면 얼굴에 유분이 남는 현상이 있는데 적당한 유분은 피부에 꼭 필요하니 오히려 나은 방법이다.


  

2. 가습기를 풀가동 시키자.


피부가 건조하다 느껴지면 제일먼저 '수분화장품'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수분에센스, 수분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건조한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수분화장품의 기본적인 보습원리는 공기중의 수분을 피부로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는것이다. 자, 이제 슬슬느낌이 오시는가. 아무리 수분제품을 바르고 있다한들 원천적 수분 공급원인 공기중에 수분이 부족하면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고가의 수분화장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가습기를 구입하여 하루종일 풀 가동 시키는 것이 피부보습에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40~50% 적정 수분을 지켜주고 추가팁은 추워도 한번씩 환기시켜 공기를 Refresh 하고, 나이트 케어 하는동안 소이 왁스로 된 천연 아로마 캔들을 켜두어 공기를 데우면 난방으로 인해 생기는 건조함 보다 좋을 뿐 아니라 은은향 향으로 기분까지 좋아진다.



3. 화장실에서 스킨케어 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일명 '3초 보습법'이다. 세안 후 3초안에 피부에 보습제품을 발라주어 피부 속 수분을 잡아주는 것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박태윤 씨는 "세안 직후에는 피부의 수분을 급속도로 빼앗긴다" 며 "세안 직후에 빨리 보습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욕실안에서 보습이 이뤄지면 좋다"고 조언한다. 습관처럼 세안후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도 하지말자. 피부에 남겨져야 할 수분을 굳이 수건으로 없앨 필요는 없다.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수건에 먼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말리거나 손을 가볍게 닦는 용도로만 수건을 사용한다. 또 세안후에는 각질이 정리되고 모공이 열려있기 때문에 수분이 더욱 쉽게 증발된다. 세안 후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오일을 발라주면 코팅이 되어 보습효과가 좋다. 참고로 스킨케어 마지막 단계에서도 오일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4. 보습층을 쌓기 위한 스킨케어 레이어링


화장품은 단계에 따라 농도가 다르다. 무조건 많이 바른다고 피부에 수분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피부에 흡수되지 못한 제품이 피부 표면에 겉돌아 피지 분비를 촉진시키거나 모공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스킨케어도 레이어링이 중요하다.


가볍고 묽은 제형부터 바르기
세안하고 난 후 일반적으로 토너,에센스,로션,크림 순으로 기초제품을 바른다. 이는 묽은 타입에서 점성이 있고 농도감이 있는 제품을 마지막에 바르는 레이어링 기본원에 따른것이다. 크림을 두가지 이상 바를 경우에는 수분이 많은 젤 타입을 먼저 바르고 난 뒤에 유분이 많은 제품을 바르는 것이 좋다.


2~3분씩 제품을 충분히 흡수시키기

스킨케어로 레이어링 할 때에는 먼저 바른 제품이 완전히 흡수된 후에 다음 단계의 제품을 발라야 밀러거나 겉돌지 않는다. 이때 화장품을 바르고 나서 세게 두드리면 피부에 자극이 되니 한 제품당 2~3분씩 간격을 두고 톡톡 두드려 완전히 흡수시킨 후에 바르자. 어짜피 시간도 많은 겨울밤이지 않은가.




4. 영양크림은 도톰하게 바르자.

겨울에는 아무래도 기초 스킨케어 마무리 단계에 영양크림을 사용하게 된다. 우선 씻고 기본 스킨케어 하고 눕기전에 영양 크림을 도톰하게 바르자. 얼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나선형을 그리면서 원활한 혈액 순환이 되도록 마사지 해보자. 이마저도 귀찮다면 좀 넉넉하게 바르고 바로 잠자리에 들자. 잠자는 동안 피부가 천천히 영양크림을 흡수시키도록 말이다.



5. 이틀에 한번은 마스크팩을 하자.


피부 깊숙한 곳까지 수분을 공급해 주는 시트팩으로 낮 동안 찬바람과 난방기구들로 지치고 건조해진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10~20분 동안 그냥 붙이기고 누워있으면 되니 이보다 쉽고 효과좋은 방법도 없다. 시트팩을 장시간 붙이고 있다고 해서 좋은것이 아니다. 붙이고 잠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특히 건조한 겨울에는 적정시간보다 2,3분 빠르게 떼어내는 것이 좋다고한다. 최근에는 시트와 앰플액 성분을 강화해서 보습효과와 기능성을 높인 다양한 마스크팩들이 나와있다. 마스크 시트는 앰플을 피부에 전달하는 컨테이너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시트 자체로 피부에 영향을 주므로 시트의 재질과 성분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시트가 종이처럼 얇으면 앰플을 흡수하고 있지 않고 흘러내린다. 두툼하고 촉촉한 시트는 묵직하게 피부를 감싸 흡수력을 높인다. 



6. 일찍 자자.

일찍 잠자리에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하는 것이 사실 피부 미인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도 있지 않은가. 누워서 딱히 할 것도 없다면 일찍자고 많이자자.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피부 재생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니 최소 밤 12시전에는 자는 것이 좋다. 사실 올빼미족인 나도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렵다. 정상적인 회복 과정을 거친 면역체계는 제대로 순기능을 발휘하고 겨울철 걸리기 쉬운 감기 예방에도 좋으니 잠이 보약이다.





지금까지 춥고 움직이기 싫은 겨울철, 이불 속에 뒹굴거리더라도 피부는 좋아질 수 있는 팁을 정리 해 보았다. 

그냥 누워있는데도 예뻐질 수 있다면 꿀팁 중에 꿀팁이 아닐까.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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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말 제대로 미친 구찌(Gucci) - 역사편





구찌가 미쳤다. 물론 좋은 의미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분명 공감의 마음으로 클릭했을 것이라 믿는다.


구찌의 룩북을 보고 이렇게 미소지어 본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다녀온 마카오에서도 나는 구찌 매장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보냈다.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 CEO 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물러나고, ''마르코 비자리' CEO와 그가 무명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파격 승진시킨 일은 그야말로 구찌의 '신의 한수' 였다.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 '알렉산드로 미켈레' 와 관해서는 따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프리다 지아니니'의 사임은 새로운 구찌를 위한 자진 사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2014.12.13 기사)는 실적부진으로 구찌의 고위경영진 2명 (CEO 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 전격 교체 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의하면 구찌의 2014년 3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1.6% 감소했으며 상반기에는 4.5%가 감소 했다고 한다.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구찌의 선택은 성공적이다. 

파격적 인사와 함께 최근 다시 가장 핫한 브랜드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구찌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구찌(GUCCI) 는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에 의해 이탈리아 피렌체에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이다.

구찌의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대대로 밀집모자를 만들던 집안에서 태어 났다.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사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판단하여, 그의 나이 17세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이는 사보이호텔(Savoy Hotel)의 벨보이로 들어간다. 허드렛일이지만 상류층 고객들의 최고급 가죽트렁크를 옮기며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가죽제품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후 1902년 고향인 프렌체로 돌아와 프란지(Franzi)라는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고, 1921년 피렌체의 비냐 누오바 거리(Via VignaNuova)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구찌' 가죽전문매장을 열었고, 연이어 같은 해 빠리오네 거리(Via Del Parione)에 두번째 매장을 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 명품 '구찌'의 시작이었다. 그 후 네 아들과 함께 1940년대 무렵 밀라노,로마 등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를 비롯, 1950년대 부터는 런던, 뉴욕, 파리 등 전세계로 매장을 확대했다.




'구찌'를 오픈하기 전 구찌오 구찌는 1906년 작은 마구상을 운영하면서 가죽 승마용품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하지만 승마용품은 귀족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마차의 활용이 점차 줄고 자전거가 인기를 끌면서 마구상을 접고 작업장과 제품군을 을 확대하여 '구찌'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 구찌의 가죽제품은 승마로부터 영감을 받은것이 많았다. 승마 용품중 호스빗(Horsebit:말의 재갈)을 가죽용품에 장식하는 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되었다. 














구찌는 위기에 강하다


 구찌는 위기의 상황도 현명하게 대처했다. 1940대 제 2차 세계대전으로으로 모든 물자가 전쟁에 동원대야 했고, 국제연명에선 이탈리아로 수출금지령을 내려 가죽이나 금속 등의 소재가 부족해졌다. 첫째 아들 알도 구찌(Aldo Gucci)는 대나무, 대마, 황마 등의 대체품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마와 삼마를 이용해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직조로 새긴 디아멘테(Diamante) 캔버스가 나왔다. 위기의 순간에 구찌의 첫 시그니처 캔버스가 개발 된 것이다. 1947년 제 2차 세계대전은 종료되었지만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때 수많은 가죽 업체가 도산했다. 알도 구찌는 가죽을 돼지피역을 활용하는 대안을 찾아냈고,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의 대나무를 활용하기도 했다. 전쟁 후의 위기는 구찌 역사상 가장 인기제품으로 알려진 뱀부백(Bamboo Bag)이 탄생했다.







가족경영, 그리고 경영권싸움


 1953년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72세로 세상을 따나고, 알도 (Aldo), 바스코 (Vasco), 우고 (Ugo), 로돌프 (Rodolfo) 구찌 4형제가 구찌를 이어 받았다.  알도 구찌는 탁월한 비지니스 감각으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60년대 중반에 창립자인 아버지 이름에서 딴 GG 로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가방, 옷, 악세서리에 사용했으며 같은해에 재키 백(Jackie Bag)을 만들었다. 또한 팜비치,비버리힐즈,도쿄,홍콩 등에 매장을 내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게 했다. 구찌는 가족 경영진에 결정을 통해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Maurizio) 구찌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올로(Paolo) 구찌는 마우리초 구찌의 경영권 승계에 크게 반발했고, 파올로 구찌(Paolo Gucci) 라는 이름으로 핸드백,악세서리, 와인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는 구찌 이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에 위기가 왔고 무분별한 라이센스 남용으로 구찌의 이미지도 추락하면서 구찌의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가문내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구찌오 구찌의 손자 마우리초는 구찌의 옛 명성을 찾기위해 노력했다. 마우리초 구찌에 의해 90년대 뉴욕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톰포드(Tom Ford)가 영입되었고 변화와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던 1995년 밀라노 자택 앞에서 마우리초 구찌는 전처의 총에맞아 사망하는 비운의 인물이 된다.







전문경영인의 시대 



 1984년 이탈리아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도메니코 데 쏠레(Domenico De Sole)를 구찌 아메리카의 사장 겸 관리이사로 영입했고, 버그도프굿맨(Bergdorf goodman)백화점 뉴욕지사장 돈 멜로(Dawn Mello)를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했다. 이로써 구찌의 전문 경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도미니코 데 쏠레는 남발했던 구찌의 10만여종에 달하는 라이센스 사업을 정리했고 프렌차이즈도 환수해가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되찾아갔다. 1987년부터 바렌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1989년 알도 구찌와 파올로구찌가 보유한 50% 지분을 모두했다. 이후 1993년 마우리초 구찌가 자신의 50% 주식 지분을 매각하면서 인베스트코프가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했다. 1995년 돈 멜로는 구찌를 떠나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을 회장으로 돌아갔고, 도메니코 데 쏠레는 구찌의 CEO(최고 업무 책임자)를 맡았다. 1998년 구찌는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고, 이후 패션계 에서는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더 나아가 매장 구성과 광고까지 진두진휘하여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랙터라는 포지션이 유행하게 된다. 

 

 1999년 구찌는 피노-프렝탕-루두트(PPR : Pinault-Printemps-Redoute)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했고 구찌그룹(GUCCI Group)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이브 생 로랑', '세르지오 로시' 등 많은 브랜드를 흡수했고 몸집을 키워나갔다. 2004년 구찌 변화의 주역이었던 도미니코 데 쏠레와 톰포드는 재계약에 대한 PPR그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다. 이 후 마크 리(Mark Lee)가 구찌의 새로운 CEO로 지명되고, 남성복 디자인의 존 레이(John Ray), 여성복 디자인의 알렉산드라 파치네티(Alessandra Facchinetti), 악세사리 라인에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로 구성된 3인 디자이너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전 펜디(FENDI)의 핸드백 디자이너 였고, 그녀가 맡은 악세서리 라인이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얻게되면서 2006년 구찌 전체를 단독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2007년 시장 조사 전문회사 닐슨(Nielsen)은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구찌를 선정했다.

 

2009년 마크 리를 대신하여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Partizio di Marco)가 CEO로 구찌에 합류했고 같은 해에 구찌의 디자인 사무실을 로마의 팔라조 알베리니로 옮겼다. 그리고 현재는 서두에 이야기했던 대로 2014년 구찌의 실적부진으로 다시 변화가 찾아온다. 구찌의 부활을 위해 임명된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 가 CEO를 맡았다. 그는 '스텔라 메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등 다른 명품브랜드의 CEO를 맡아 성장을 이끌어낸 '두 자릿수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문경영인다. 맡는 기업마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달성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무명의 내부 직원이었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수석디자이너로 임명한것도 마르코 비자리이다. 타 명품 브랜드가 외부의 간판급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그 디자이너가 자기의 팀을 데려와 제품을 개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브랜드 혁신과 전면 쇄신을 외치는 상황에 내부 승진은 드문일이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밀라노 패션쇼를 5일 앞두고 사표를 던지고 나가면서 후임자 물색이 덜 끝났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아니니를 도와 구찌를 이끌던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내부승진은 대 성공이다.





  • 오늘은 구찌의 역사적 큰 사건을 중심으로 흐름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작은 가죽전문점에서 시작한 구찌는 약 100년동안 위기와 기회를 현명하게 대처하며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대표 명품(名品) 브랜드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역사만 살펴보았지만 구찌는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늘 사회 발전과 문화 보존 등에 기여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면들 역시 구찌를 이어가게 하는 명맥이 아닐까 싶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다뤄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마르코 비자리의 인터뷰에서 '명품이 되는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마지막으로 이번 구찌-역사편을 종료 해야겠다. 안녕.

  • "첫째는 시간입니다. '명품(luxury)'이라는 가치를 갖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시간과 그에 따른 역사가 필요합니다. 신규 브랜드들이 명품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품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를 차별화해야 합니다. 명품 업계에서 제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제조 업계에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자금을 투자해 기계를 새것으로 바꾼다고 해서 제품이 좋아지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품을 만드는 것은 장인, 즉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투자는 곧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최상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참고자료]
  • 세계브랜드백과,인터브랜드) 구찌(Gucci) 
  • 나무위키
  • 2015.11.07 [Weekly BIz] '두 자릿수 성장'의 마법사 "나만의 경쟁력을 파악하라"
  • 2014.12.13 구찌, 실적 부진에 고위 경영진 2명 전격 교체 - 이데일리



5년의 연애 끝에 배우 김태희(37)와 배우 겸 가수 비-정지훈(35) 이 2017년 1월 19일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1년 소셜커머스 회사의 광고를 함께 촬영을 하며 인연을 만들어간 두 사람은 2012년 가을 연인으로 발전했고, 2013년 1월 1일 두 사람의 열애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공식 커플임을 인정한 두사람으로 인해 새해부터 떠들썩 했었다. 비는 광고 촬영장에서 첫 눈에 김태희 일명 태쁘에게 반했다고 한다. (물론, 반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만...) 군입대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비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진심을 김태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보통은 군대에 입대하기전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본인의 입대와 국방의 의무를 해야하는 이 나라를 탓하며 포기하고는 하던데, 입대를 앞두고 보인 이러한 비의 행동은 보통의 남자분들은 더욱 공감하겠지만 상당히 용기있는 행동인 것 같다. 역시,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하는 것이 진리인가 보다.


비는 군입대와 제대 후 연예병사와 관련 된 부정적인 이슈들과 조금 뜸한 연기와 가수 활동을 보이면서, 글로벌 스타로 활동하던 예전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고, 김태희 역시 2015년 SBS 드라마 용팔이 이후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행사나 CF정도로만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해도 이 두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표 톱스타 인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도 두사람의 결혼에 관한 모든 것은 화제이며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두 사람은 그동안 조용히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데이트 목겸담이 각종 매체 많이 올라오기도 했고 비의 절친한 친구인 빽가의 인스타그램엔 빽가가 운영하는 강남의 음식점에 다녀간 인증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또 김태희는 매거진 인터뷰에서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싸워도 보고 힘든일도 겪었는데 인성이 좋고 따뜻하다. 우선 대화가 잘 통해요. 성향이 잘 맞고 공통된 화제가 많아서 만나면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고, 비 또한 "너무나 은혜로운 사람이고 모든것에 기준이 된다.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다."라며 김태희를 이미 가족이라 표현한 인터뷰도 있어왔다. 









비 (정지훈/Rain) - 가수, 영화배우


1982.06.25 / 개띠 / 게자리 


소속 ㅣ레인컴퍼니


185cm / 74kg / O형


학력 ㅣ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천주교


1998년 그룹 '팬클럽' 으로 데뷔






김태희 - 탤런트, 영화배우


1980.03.29 / 원숭이띠 / 양자리


소속 ㅣ 루아엔터테인먼트


162cm / 45kg


학력 ㅣ 서울대학교 의류학 학사


천주교


2000년 '화이트' CF 로 데뷔




김태희와 비는 연상연하 커플로 두살 차이가 나고 두사람의 신장은 23cm가 차이가 난다. 체격의 차이로만 보자면 비는 듬직한 오빠같은 느낌이 든다. 

연상연하 커플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느낌때문에 김태희가 연상이라는 것에 아차 하는 기분이 드는 점을 공감 할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대해서 포스팅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위의 저 사진이다. 성당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두사람은 비공개라는 말그대로 결혼식 자체를 조용하게 치뤘다. 그래서 많은 사진이 나오고 있진 않지만, 저 사진을 유독 한참 들여다 보게 되었다. 김태희를 따라서 비의 종교도 천주교가 되었다고 들은것 같은데, 합장을 한 두손과 꼭 감은 두눈에서 진심으로 사랑과 행복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비의 신곡 '최고의 선물'이 발표되고 활동을 시작하였을때, 주변 사람들이 이건 분명 김태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음악이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월 15일 신곡이 발매된 지 이틀이 지난 17일에 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팔 편지로 결혼소식을 알렸다. 



[비의 결혼발표 자필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추운겨울 모두들 건강하신지요?

정지훈 입니다.

어느덧 제가 데뷔한지도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와 함께 했던 많은 팬 여러분들 또한 예쁜 숙녀로 혹은

한 아이의 엄마로 훌륭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남편이자 남자가 되려 합니다.

그녀는 제가 힘들때나 행복할때나 변치않고 늘 제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결혼식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못드리는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6년동안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책임감있고 겸손한 모습으로 멋진 가수와 배우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최고의 선물 입니다."


2017.1.17





다음은 비의 자필 편지가 올라온 후에 비의 편지를 바탕으로 작성한 듯한 김태희 소속사에서 올린 공식입장 전문이다.



김태희 소속사의 공식 입장


안녕하세요 루아엔터테인먼트입니다.

배우 김태희씨와 정지훈씨가 서로의 가장 소중한 반려자로 연을 맺을 시기이기에 현재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연인으로서 사랑을 키워오며 마음과 신뢰가 쌓여 드디어 너무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에 결혼식은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천주교 성사로 진행할 예정이며,

양가 부모님들과 본인들의 뜻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공개드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양가 부모님들과 가족분들만 모시고 작고 뜻깊게 올릴 것이며 예식 후 신혼여행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실의 아름다운 선물인 자녀는 혼인 후에 천천히 계획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드리며 모범적인 부부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궁금하실 내용들은 상황마다 정리되는대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루아 엔터테인먼트 올림.







비의 편지는 담백하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다. 오랜 연애 기간만큼 진득하고 진실된 느낌이다. 힘들때나 행복할때나 변치 않고 본인의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는 부분과 신뢰가 쌓여 결실을 맺는다는 부분에서 은은하게 미소가 나온다. 위의 사진에서 보여준 내가 받은 느낌처럼 편지를 통해서도 왠지 이 두사람 아름답게 잘 살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가 주목하는 부부인만큼 내적으로 외적으로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좋은 부부가 되길 축복한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그녀의 일생


- 진정한 비욘드 뷰티를 보여준 그녀의 삶







1993년 1월 20일.

아름다운 그녀 오드리 헵번은 스위스 톨로 체나스에서 63세의 나이로 우리곁을 떠났다.

내년이면 그녀와 이별한지 25주기가 된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말은 오드리 헵번을 두고 한 말일까.

외면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이루어 낸 아름다움의 진정한 아이콘, 나의 뮤즈, 오드리 헵번











1. 오드리헵번의 어린시절


영국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유서깊은 귀족출신 엄마 사이에서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블리쉘에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비교적 내성적이었던 오드리헵번은 5살때 영국 기숙사 학교로 가면서 발레와 음악을 접했다. 어린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지내며 생긴 그리움과 서툰영어, 통통한 몸으로 운동도 잘하지 못해서 받은 따돌림들을 극복해 내며 점차 독립심이 강한 꿈많은 소녀로 성장하고 있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며 자라던 그녀나이 10살무렵. 세계 2차 대전이 터지면서 그녀는 네덜란드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아버지 안소니 헵번은 독일 나치에 적극 동조하며,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그녀의 오빠들 역시 독일군에게 끌려갔으며 그녀를 아끼던 이모부도 죽임을 당한다. 

전쟁으로 인해 붕괴 되어버린 가족, 피난민의 처참한 아픔과 충격과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다.

( 그녀가 배우일 때 '안네의 일기'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고 악몽에 시달리며 거절했다고도 전해진다) 

전쟁기간동안 집안에 숨어 수개월을 튤립뿌리를 먹으며 연명하던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천식,부종,황달,빈혈,자궁내막증등 각종 합병증을 얻었고

일부는 평생을 안고 가야했다. 오드리헵번은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발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170cm의 큰 키와 좋지 않은 건강상태는 꿈에 제약이 되었다.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파리와 런던에서 연극과 영화의 단역배우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2. 오드리헵번의 배우활동


1952년 뮤지컬 <GIGI(지지)> 의 작가가 오드리헵번을 발견하였고, 감독에게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캐스팅이 된다.

그후 1953년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역에 발탁되어 세계적 인기를 누리게 된다. 오드리햅번의 캐스팅은 무명이었던 그녀에겐 엄청난 기회였다.

예정 되어있던 감독도 여러번 계속 바뀌고 예산도 축소되고 인기배우들의 스케줄도 맞지 않아 캐스팅된 첫 주연작 <로마의 휴일>은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후, 1954년 그녀는 <사브리나>에서의 여주인공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어 다시한번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그녀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갔다. <사브리나> 출연 후 그녀는 영화가 아닌 브로드웨이 연극 <운디네>에 물의 요정 역할로 출연했고,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토니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저 예쁜 배우가 아닌 연극 배우 출신의 정체성을 굳혔다.

1957년 발레리나를 꿈꾸던 그녀의 경험과 노래실력을 살린 뮤지컬 영화 <화니페이스>에 출연했고, 그녀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중에 본인의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영화로 <화니페이스>를 뽑았다고 한다. 1961년, 시대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굳힌 작품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 고라이틀리 역을 맡았다.  블랙 드레스와 선그라스 진주목걸이와 티아라, 긴 장갑를 하고 쇼윈도우 앞에서 화려한 보석을 감상하며 커피와 도넛을 먹는 모습은 현재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1964년 <마이페어레이디>에서 거리에서 꽃을 팔던 아가씨에서 우아한 여인으로 변모하는 역을 맡아 다시한번 그녀의 매력을 뽐냈다. 그녀는 1967년까지 겨우 15번의 배역을 맡았고 1960년 <어두워질때까지> 이후 영화 출연을 줄여가다 1989년 <영혼은 그대곁에>를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3. 오드리헵번의 외모와 스타일


관능적이고 섹스어필하는 글래머 여배우들이 인기가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그녀는 마른 몸에 고전적인 얼굴과 지적인 이미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대 최고의 아름다운 여배우로 꼽히며, 현재까지도 여러 광고에 쓰일 정도로 미의 상징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외모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나는 피부도 좋지 않아서 화장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얼굴도 각지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으며 이런 외모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한적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마른몸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등 그녀의 스타일은 꾸준히 회자된다. 데뷔 작품인 <로마의휴일>에서 선보인 헤어컷도 "헵번스타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사브리나>에서는 영화배우 최초로 특정브랜드에서 의상을 협찬받았는데, 이때 협찬한 브랜드가 지방시(Givenchy)이다. 지방시는 이때 얻은 광고효과로 세계적인 패션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이 후 오드리헵번에게 의상협찬을 적극 지원했다.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입은 그녀의 시그니처 블랙 드레스도 지방시의 드레스이다. 배우로 활동한 시기의 오드리헵번은 말그대로 유행의 선두주자이자 당대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사랑한 배우이기도 했다. 



4. 오드리헵번의 러브스토리



영화계에서의 배우로 지낸 삶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녀가 항상 바래왔던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삶은 다소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혼 전 약혼했던 제임스 핸슨과는 그녀가 유명세로 바빠지자 헤어지게 되고, 이후 1954년 세번째 와이프를 버리고 네번째 결혼을 하는 바람둥이 멜 펠러와 결혼한다. 오드리헵번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등 거장들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고 남편이 감독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등 그를 사랑했지만, 정작 멜펠러의 바람기와 오드리헵번을 향한 그의 열등감으로 잦은 다툼을 했고, 첫 번째 임신 중에 촬영 중 낙마사고를 당해서 유산이 된 후에 자주 유산을 하게되었고, 결혼 생활 말년에는 그녀에게 폭력까지 휘둘렀다고 한다. 오드헵번은 그녀의 첫째 아들 '션 페러'를 얻고 1968년 이혼했다. 약 2년여 세월이 지나 그녀는 새로운 사람과 결혼했다. 

그녀와 두번째 결혼을 한 9세 연하의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는 22세때 시대의 아이콘으로 영화 촬영을 하던 오드리헵번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냈던 14세 소년이었다. 전성기의 오드리 헵번의 모습을 사랑했던,  '나중에 꼭 오드리헵번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던 그는 중년이 된 평범한 엄마와 부인을 꿈꾸던 오드리헵번을 원하지 않았다. 평범한 여인의 오드리헵번이 아닌 배우 오드리헵번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의 외도 또한 번번히 가십기사로 다뤄졌다. 1979년 두번째 아들 '루카 도티'를 두고 결국 이혼한다. 두번의 이혼을 겪은 그녀는 모든 영화계 생활을 접고 온전히 두 아들에게 집중했다. 이혼 후 유니세프 대사로 활동한 그녀는 간간히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유명세를 세계구원에 적용하기 위해서 였다. 도티와의 이혼 후 구호 활동 시기에 진정한 소울메이트인 네덜란드 배우 로버트 월더스를 만났다. '결혼이 그 어떤것도 추가하지 못할 만큼 사랑으로 충만하다'고 말하던 둘은 결혼은 하지 않았고 그는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5. 오드리헵번의 유니세프 활동과 생의 마지막 



은퇴와 이혼이후 오드리헵번의 구호활동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뻐했다. 

유니세프 대사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할동에 참여하여 제3세계 오지 마을에서 아이들을 도왔으며, 구호 지역의 많은 생명들을 돕는데 힘썼다. 그녀의 활동들은 외모보다 아름다웠다. 60세를 바라보던 그녀는 오지,전장,전염병 지역 그 어디든 유니세프가 원하는 곳이면 열성적으로 찾아갔다. 구호 메세지를 알리기 위해 배우 시절에도 잘 하지않던 인터뷰를 자청했고, 그녀의 활동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구호활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다. 1992년 9월 소말리아 방문 전 부터 오드리헵번의 건강은 적신호였다. 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진행한 무리한 일정들에도 진통제로 고통을 참아내며 소화했다. 소말리아에서 돌아 온 이후에 구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중에도 진통제를 달고 지냈다. 결국 11월 그녀는 직장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했으나 경과는 좋지 않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3개월, 그녀는 오랫동안 살았던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마지막 생을 고요하게 보냈다고 한다. 오드리헵번은 사랑하는 가족과 로버트 월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1993년 1월 20일 63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정열적이고 진심어린 구호활동은 민간 구호 단체와 유니세프가 함께 제정한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통해 그 뜻이 이어지게 되었다.



6. 아들에게 남긴 시 (개인적으로 이 시는 정말 아름답다)


Time Tested Beauty Tips

세월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


For attractive lips, speak words of kindness.

매혹적인 입술을 가지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For lovely eyes, seek out the good in people.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람들의 선한 점을 보아라


For a slim figure,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다면 배고픈 자와 음식을 나누어라.


For beautiful hair, let a child run his fingers through it once a day.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고 싶다면, 하루 한번 어린이의 손가락으로 그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하라.


For poise, walk with the knowledge you'll never walk aone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싶다면, 결코 그대 혼자 걸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도록 하라.


People, even more than things, have to be restored, renewed, revived, reclaimed and redeemed and redeemed..

재산 보다는 사람들이야 말로 회복되어야하고, 새로워져야 하며, 활기를 얻고, 깨우쳐지고,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Never throw out anybody.

Remember, if you ever need a helping hand. you'll find one at the end of your arm.

누구도 내버리지 말라.

기억하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때 그대는 자신의 손 끝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As you grow older you will discover that you have two hands.

One for helping yourself, the other for helping others.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대의 손이 두개이 이유가

하나는 자신을, 하나는 다른이를 돕기 위해서 임을 알게 되리라.



오드리헵번의 유언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글은 시인 샘 레벤슨(Sam Levenson)의 시이다.




7. 오드리헵번의 영향력




2014년 5월 4일 구글에서 오드리헵번의 탄생 85주년을 기념하며 기념일 로고를 제작했다.

2014년 11월 29일부터 2015년 3월 8일까지 오드리헵번의 생애 전체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다.

그녀의 둘째아들 루카 도티는 <오드리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는 헵번이 출연한 영화의 소품, 의상, 생전 물품들을 전시하는데 주관했다.

그녀의 첫째아들 션 페러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먼 나라의 비극에 발벗고 나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을 제안했고,

304명의 희생자를 낸 4.16 세월호 참사를 기리기는 '세월호 기억의 숲'은 2016년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부터 4.16km 떨어진 곳에 완공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화려한 패션 뿐 아니라 자신이 받은 전세계인의 사랑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되돌려 주고 있는 진정한 비욘드 뷰티이자 찬란한 별이다.

감히 말하건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그녀의 아름다움이여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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