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 밤이 더 긴 계절. 겨울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 외치며 겨울만 되면 침대나 전기장판 위에 누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왕 누워서 보내는 계절이라면 건조해지는 피부라도 관리하면서 보내보자.

낮 시간의 피부가 자외선이가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 활동을 한다면, 밤 시간의 피부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하고 활발한 세포 재생을 한다. 또한,밤에는 신진대사의 흐림이 빨라져 피부가 유효성분을 흡수하는 속도가 배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은 난방으로 인해 밤 12- 새벽4시 사이는 피부가 최고로 건조한 상태에 놓인다고 한다. 그러니 잠들기 전에 스킨케어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부터 나이트 케어를 도와줄 각종 정보를 풀어보려한다.







1. 샤워와 세안은 최대한 짧게 하자.


샤워와 세안은 하루 종일 외부 상황들로 말라있던 피부에 즉각적으로 수분을 공급해 주는데는 효과적이지만, 뜨거운 물과 증기가 피부표면의 더러움 뿐 아니라 천연 보습막까지 녹여버리니 주의 해야한다. 특히나 최악은 40도 이상의 뜨거운 물로 긴 샤워를 하다가 마지막에 거품(폼클렌저,비누)세안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피부의 건조를 더욱 심화시킨다.

피부를 뽀드득 소리가 날때까지 씻거나 때를 자주 미는 것도 수분 손실이 높을 수 밖에 없으니 금물이다. 피부에 쌓인 각질을 제거 하겠다고 필링이나 스크럽을 주기로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세안은 피부 방어막에 손상을 주고, 손상된 피부방어막은 건조와 잔주름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겨울에 너무 뜨겁지 않은 물로 최대한 짧은시간에 마치고 피부 자극이 덜한 클렌징 제품을 사용하자. 무작정 청결하게 하겠다고 오랜시간 씻어내는건 오히려 역효과이다. 참고로 아침 세안은 물로만 하도록 하자. 물로만 씻으면 얼굴에 유분이 남는 현상이 있는데 적당한 유분은 피부에 꼭 필요하니 오히려 나은 방법이다.


  

2. 가습기를 풀가동 시키자.


피부가 건조하다 느껴지면 제일먼저 '수분화장품'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수분에센스, 수분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건조한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수분화장품의 기본적인 보습원리는 공기중의 수분을 피부로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는것이다. 자, 이제 슬슬느낌이 오시는가. 아무리 수분제품을 바르고 있다한들 원천적 수분 공급원인 공기중에 수분이 부족하면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고가의 수분화장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가습기를 구입하여 하루종일 풀 가동 시키는 것이 피부보습에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40~50% 적정 수분을 지켜주고 추가팁은 추워도 한번씩 환기시켜 공기를 Refresh 하고, 나이트 케어 하는동안 소이 왁스로 된 천연 아로마 캔들을 켜두어 공기를 데우면 난방으로 인해 생기는 건조함 보다 좋을 뿐 아니라 은은향 향으로 기분까지 좋아진다.



3. 화장실에서 스킨케어 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일명 '3초 보습법'이다. 세안 후 3초안에 피부에 보습제품을 발라주어 피부 속 수분을 잡아주는 것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박태윤 씨는 "세안 직후에는 피부의 수분을 급속도로 빼앗긴다" 며 "세안 직후에 빨리 보습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욕실안에서 보습이 이뤄지면 좋다"고 조언한다. 습관처럼 세안후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도 하지말자. 피부에 남겨져야 할 수분을 굳이 수건으로 없앨 필요는 없다.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수건에 먼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말리거나 손을 가볍게 닦는 용도로만 수건을 사용한다. 또 세안후에는 각질이 정리되고 모공이 열려있기 때문에 수분이 더욱 쉽게 증발된다. 세안 후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오일을 발라주면 코팅이 되어 보습효과가 좋다. 참고로 스킨케어 마지막 단계에서도 오일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4. 보습층을 쌓기 위한 스킨케어 레이어링


화장품은 단계에 따라 농도가 다르다. 무조건 많이 바른다고 피부에 수분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피부에 흡수되지 못한 제품이 피부 표면에 겉돌아 피지 분비를 촉진시키거나 모공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스킨케어도 레이어링이 중요하다.


가볍고 묽은 제형부터 바르기
세안하고 난 후 일반적으로 토너,에센스,로션,크림 순으로 기초제품을 바른다. 이는 묽은 타입에서 점성이 있고 농도감이 있는 제품을 마지막에 바르는 레이어링 기본원에 따른것이다. 크림을 두가지 이상 바를 경우에는 수분이 많은 젤 타입을 먼저 바르고 난 뒤에 유분이 많은 제품을 바르는 것이 좋다.


2~3분씩 제품을 충분히 흡수시키기

스킨케어로 레이어링 할 때에는 먼저 바른 제품이 완전히 흡수된 후에 다음 단계의 제품을 발라야 밀러거나 겉돌지 않는다. 이때 화장품을 바르고 나서 세게 두드리면 피부에 자극이 되니 한 제품당 2~3분씩 간격을 두고 톡톡 두드려 완전히 흡수시킨 후에 바르자. 어짜피 시간도 많은 겨울밤이지 않은가.




4. 영양크림은 도톰하게 바르자.

겨울에는 아무래도 기초 스킨케어 마무리 단계에 영양크림을 사용하게 된다. 우선 씻고 기본 스킨케어 하고 눕기전에 영양 크림을 도톰하게 바르자. 얼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나선형을 그리면서 원활한 혈액 순환이 되도록 마사지 해보자. 이마저도 귀찮다면 좀 넉넉하게 바르고 바로 잠자리에 들자. 잠자는 동안 피부가 천천히 영양크림을 흡수시키도록 말이다.



5. 이틀에 한번은 마스크팩을 하자.


피부 깊숙한 곳까지 수분을 공급해 주는 시트팩으로 낮 동안 찬바람과 난방기구들로 지치고 건조해진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10~20분 동안 그냥 붙이기고 누워있으면 되니 이보다 쉽고 효과좋은 방법도 없다. 시트팩을 장시간 붙이고 있다고 해서 좋은것이 아니다. 붙이고 잠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특히 건조한 겨울에는 적정시간보다 2,3분 빠르게 떼어내는 것이 좋다고한다. 최근에는 시트와 앰플액 성분을 강화해서 보습효과와 기능성을 높인 다양한 마스크팩들이 나와있다. 마스크 시트는 앰플을 피부에 전달하는 컨테이너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시트 자체로 피부에 영향을 주므로 시트의 재질과 성분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시트가 종이처럼 얇으면 앰플을 흡수하고 있지 않고 흘러내린다. 두툼하고 촉촉한 시트는 묵직하게 피부를 감싸 흡수력을 높인다. 



6. 일찍 자자.

일찍 잠자리에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하는 것이 사실 피부 미인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도 있지 않은가. 누워서 딱히 할 것도 없다면 일찍자고 많이자자.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피부 재생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니 최소 밤 12시전에는 자는 것이 좋다. 사실 올빼미족인 나도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렵다. 정상적인 회복 과정을 거친 면역체계는 제대로 순기능을 발휘하고 겨울철 걸리기 쉬운 감기 예방에도 좋으니 잠이 보약이다.





지금까지 춥고 움직이기 싫은 겨울철, 이불 속에 뒹굴거리더라도 피부는 좋아질 수 있는 팁을 정리 해 보았다. 

그냥 누워있는데도 예뻐질 수 있다면 꿀팁 중에 꿀팁이 아닐까.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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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말 제대로 미친 구찌(Gucci) - 역사편





구찌가 미쳤다. 물론 좋은 의미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분명 공감의 마음으로 클릭했을 것이라 믿는다.


구찌의 룩북을 보고 이렇게 미소지어 본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다녀온 마카오에서도 나는 구찌 매장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보냈다.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 CEO 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물러나고, ''마르코 비자리' CEO와 그가 무명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파격 승진시킨 일은 그야말로 구찌의 '신의 한수' 였다.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 '알렉산드로 미켈레' 와 관해서는 따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프리다 지아니니'의 사임은 새로운 구찌를 위한 자진 사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2014.12.13 기사)는 실적부진으로 구찌의 고위경영진 2명 (CEO 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 전격 교체 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의하면 구찌의 2014년 3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1.6% 감소했으며 상반기에는 4.5%가 감소 했다고 한다.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구찌의 선택은 성공적이다. 

파격적 인사와 함께 최근 다시 가장 핫한 브랜드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구찌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구찌(GUCCI) 는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에 의해 이탈리아 피렌체에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이다.

구찌의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대대로 밀집모자를 만들던 집안에서 태어 났다.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사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판단하여, 그의 나이 17세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이는 사보이호텔(Savoy Hotel)의 벨보이로 들어간다. 허드렛일이지만 상류층 고객들의 최고급 가죽트렁크를 옮기며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가죽제품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후 1902년 고향인 프렌체로 돌아와 프란지(Franzi)라는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고, 1921년 피렌체의 비냐 누오바 거리(Via VignaNuova)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구찌' 가죽전문매장을 열었고, 연이어 같은 해 빠리오네 거리(Via Del Parione)에 두번째 매장을 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 명품 '구찌'의 시작이었다. 그 후 네 아들과 함께 1940년대 무렵 밀라노,로마 등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를 비롯, 1950년대 부터는 런던, 뉴욕, 파리 등 전세계로 매장을 확대했다.




'구찌'를 오픈하기 전 구찌오 구찌는 1906년 작은 마구상을 운영하면서 가죽 승마용품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하지만 승마용품은 귀족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마차의 활용이 점차 줄고 자전거가 인기를 끌면서 마구상을 접고 작업장과 제품군을 을 확대하여 '구찌'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 구찌의 가죽제품은 승마로부터 영감을 받은것이 많았다. 승마 용품중 호스빗(Horsebit:말의 재갈)을 가죽용품에 장식하는 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되었다. 














구찌는 위기에 강하다


 구찌는 위기의 상황도 현명하게 대처했다. 1940대 제 2차 세계대전으로으로 모든 물자가 전쟁에 동원대야 했고, 국제연명에선 이탈리아로 수출금지령을 내려 가죽이나 금속 등의 소재가 부족해졌다. 첫째 아들 알도 구찌(Aldo Gucci)는 대나무, 대마, 황마 등의 대체품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마와 삼마를 이용해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직조로 새긴 디아멘테(Diamante) 캔버스가 나왔다. 위기의 순간에 구찌의 첫 시그니처 캔버스가 개발 된 것이다. 1947년 제 2차 세계대전은 종료되었지만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때 수많은 가죽 업체가 도산했다. 알도 구찌는 가죽을 돼지피역을 활용하는 대안을 찾아냈고,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의 대나무를 활용하기도 했다. 전쟁 후의 위기는 구찌 역사상 가장 인기제품으로 알려진 뱀부백(Bamboo Bag)이 탄생했다.







가족경영, 그리고 경영권싸움


 1953년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72세로 세상을 따나고, 알도 (Aldo), 바스코 (Vasco), 우고 (Ugo), 로돌프 (Rodolfo) 구찌 4형제가 구찌를 이어 받았다.  알도 구찌는 탁월한 비지니스 감각으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60년대 중반에 창립자인 아버지 이름에서 딴 GG 로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가방, 옷, 악세서리에 사용했으며 같은해에 재키 백(Jackie Bag)을 만들었다. 또한 팜비치,비버리힐즈,도쿄,홍콩 등에 매장을 내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게 했다. 구찌는 가족 경영진에 결정을 통해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Maurizio) 구찌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올로(Paolo) 구찌는 마우리초 구찌의 경영권 승계에 크게 반발했고, 파올로 구찌(Paolo Gucci) 라는 이름으로 핸드백,악세서리, 와인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는 구찌 이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에 위기가 왔고 무분별한 라이센스 남용으로 구찌의 이미지도 추락하면서 구찌의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가문내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구찌오 구찌의 손자 마우리초는 구찌의 옛 명성을 찾기위해 노력했다. 마우리초 구찌에 의해 90년대 뉴욕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톰포드(Tom Ford)가 영입되었고 변화와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던 1995년 밀라노 자택 앞에서 마우리초 구찌는 전처의 총에맞아 사망하는 비운의 인물이 된다.







전문경영인의 시대 



 1984년 이탈리아 출신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도메니코 데 쏠레(Domenico De Sole)를 구찌 아메리카의 사장 겸 관리이사로 영입했고, 버그도프굿맨(Bergdorf goodman)백화점 뉴욕지사장 돈 멜로(Dawn Mello)를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했다. 이로써 구찌의 전문 경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도미니코 데 쏠레는 남발했던 구찌의 10만여종에 달하는 라이센스 사업을 정리했고 프렌차이즈도 환수해가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되찾아갔다. 1987년부터 바렌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1989년 알도 구찌와 파올로구찌가 보유한 50% 지분을 모두했다. 이후 1993년 마우리초 구찌가 자신의 50% 주식 지분을 매각하면서 인베스트코프가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했다. 1995년 돈 멜로는 구찌를 떠나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을 회장으로 돌아갔고, 도메니코 데 쏠레는 구찌의 CEO(최고 업무 책임자)를 맡았다. 1998년 구찌는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고, 이후 패션계 에서는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더 나아가 매장 구성과 광고까지 진두진휘하여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랙터라는 포지션이 유행하게 된다. 

 

 1999년 구찌는 피노-프렝탕-루두트(PPR : Pinault-Printemps-Redoute)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했고 구찌그룹(GUCCI Group)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이브 생 로랑', '세르지오 로시' 등 많은 브랜드를 흡수했고 몸집을 키워나갔다. 2004년 구찌 변화의 주역이었던 도미니코 데 쏠레와 톰포드는 재계약에 대한 PPR그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다. 이 후 마크 리(Mark Lee)가 구찌의 새로운 CEO로 지명되고, 남성복 디자인의 존 레이(John Ray), 여성복 디자인의 알렉산드라 파치네티(Alessandra Facchinetti), 악세사리 라인에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로 구성된 3인 디자이너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전 펜디(FENDI)의 핸드백 디자이너 였고, 그녀가 맡은 악세서리 라인이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얻게되면서 2006년 구찌 전체를 단독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2007년 시장 조사 전문회사 닐슨(Nielsen)은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구찌를 선정했다.

 

2009년 마크 리를 대신하여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Partizio di Marco)가 CEO로 구찌에 합류했고 같은 해에 구찌의 디자인 사무실을 로마의 팔라조 알베리니로 옮겼다. 그리고 현재는 서두에 이야기했던 대로 2014년 구찌의 실적부진으로 다시 변화가 찾아온다. 구찌의 부활을 위해 임명된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 가 CEO를 맡았다. 그는 '스텔라 메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등 다른 명품브랜드의 CEO를 맡아 성장을 이끌어낸 '두 자릿수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문경영인다. 맡는 기업마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달성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무명의 내부 직원이었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수석디자이너로 임명한것도 마르코 비자리이다. 타 명품 브랜드가 외부의 간판급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그 디자이너가 자기의 팀을 데려와 제품을 개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브랜드 혁신과 전면 쇄신을 외치는 상황에 내부 승진은 드문일이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밀라노 패션쇼를 5일 앞두고 사표를 던지고 나가면서 후임자 물색이 덜 끝났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아니니를 도와 구찌를 이끌던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내부승진은 대 성공이다.





  • 오늘은 구찌의 역사적 큰 사건을 중심으로 흐름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작은 가죽전문점에서 시작한 구찌는 약 100년동안 위기와 기회를 현명하게 대처하며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대표 명품(名品) 브랜드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역사만 살펴보았지만 구찌는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늘 사회 발전과 문화 보존 등에 기여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면들 역시 구찌를 이어가게 하는 명맥이 아닐까 싶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다뤄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마르코 비자리의 인터뷰에서 '명품이 되는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마지막으로 이번 구찌-역사편을 종료 해야겠다. 안녕.

  • "첫째는 시간입니다. '명품(luxury)'이라는 가치를 갖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시간과 그에 따른 역사가 필요합니다. 신규 브랜드들이 명품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품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를 차별화해야 합니다. 명품 업계에서 제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제조 업계에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자금을 투자해 기계를 새것으로 바꾼다고 해서 제품이 좋아지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품을 만드는 것은 장인, 즉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투자는 곧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최상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 [참고자료]
  • 세계브랜드백과,인터브랜드) 구찌(Gucci) 
  • 나무위키
  • 2015.11.07 [Weekly BIz] '두 자릿수 성장'의 마법사 "나만의 경쟁력을 파악하라"
  • 2014.12.13 구찌, 실적 부진에 고위 경영진 2명 전격 교체 - 이데일리



5년의 연애 끝에 배우 김태희(37)와 배우 겸 가수 비-정지훈(35) 이 2017년 1월 19일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1년 소셜커머스 회사의 광고를 함께 촬영을 하며 인연을 만들어간 두 사람은 2012년 가을 연인으로 발전했고, 2013년 1월 1일 두 사람의 열애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공식 커플임을 인정한 두사람으로 인해 새해부터 떠들썩 했었다. 비는 광고 촬영장에서 첫 눈에 김태희 일명 태쁘에게 반했다고 한다. (물론, 반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만...) 군입대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비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진심을 김태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보통은 군대에 입대하기전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본인의 입대와 국방의 의무를 해야하는 이 나라를 탓하며 포기하고는 하던데, 입대를 앞두고 보인 이러한 비의 행동은 보통의 남자분들은 더욱 공감하겠지만 상당히 용기있는 행동인 것 같다. 역시,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하는 것이 진리인가 보다.


비는 군입대와 제대 후 연예병사와 관련 된 부정적인 이슈들과 조금 뜸한 연기와 가수 활동을 보이면서, 글로벌 스타로 활동하던 예전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고, 김태희 역시 2015년 SBS 드라마 용팔이 이후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행사나 CF정도로만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해도 이 두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표 톱스타 인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도 두사람의 결혼에 관한 모든 것은 화제이며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두 사람은 그동안 조용히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데이트 목겸담이 각종 매체 많이 올라오기도 했고 비의 절친한 친구인 빽가의 인스타그램엔 빽가가 운영하는 강남의 음식점에 다녀간 인증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또 김태희는 매거진 인터뷰에서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싸워도 보고 힘든일도 겪었는데 인성이 좋고 따뜻하다. 우선 대화가 잘 통해요. 성향이 잘 맞고 공통된 화제가 많아서 만나면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고, 비 또한 "너무나 은혜로운 사람이고 모든것에 기준이 된다.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다."라며 김태희를 이미 가족이라 표현한 인터뷰도 있어왔다. 









비 (정지훈/Rain) - 가수, 영화배우


1982.06.25 / 개띠 / 게자리 


소속 ㅣ레인컴퍼니


185cm / 74kg / O형


학력 ㅣ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천주교


1998년 그룹 '팬클럽' 으로 데뷔






김태희 - 탤런트, 영화배우


1980.03.29 / 원숭이띠 / 양자리


소속 ㅣ 루아엔터테인먼트


162cm / 45kg


학력 ㅣ 서울대학교 의류학 학사


천주교


2000년 '화이트' CF 로 데뷔




김태희와 비는 연상연하 커플로 두살 차이가 나고 두사람의 신장은 23cm가 차이가 난다. 체격의 차이로만 보자면 비는 듬직한 오빠같은 느낌이 든다. 

연상연하 커플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느낌때문에 김태희가 연상이라는 것에 아차 하는 기분이 드는 점을 공감 할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대해서 포스팅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위의 저 사진이다. 성당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두사람은 비공개라는 말그대로 결혼식 자체를 조용하게 치뤘다. 그래서 많은 사진이 나오고 있진 않지만, 저 사진을 유독 한참 들여다 보게 되었다. 김태희를 따라서 비의 종교도 천주교가 되었다고 들은것 같은데, 합장을 한 두손과 꼭 감은 두눈에서 진심으로 사랑과 행복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비의 신곡 '최고의 선물'이 발표되고 활동을 시작하였을때, 주변 사람들이 이건 분명 김태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음악이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월 15일 신곡이 발매된 지 이틀이 지난 17일에 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팔 편지로 결혼소식을 알렸다. 



[비의 결혼발표 자필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추운겨울 모두들 건강하신지요?

정지훈 입니다.

어느덧 제가 데뷔한지도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와 함께 했던 많은 팬 여러분들 또한 예쁜 숙녀로 혹은

한 아이의 엄마로 훌륭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남편이자 남자가 되려 합니다.

그녀는 제가 힘들때나 행복할때나 변치않고 늘 제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결혼식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못드리는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6년동안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책임감있고 겸손한 모습으로 멋진 가수와 배우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최고의 선물 입니다."


2017.1.17





다음은 비의 자필 편지가 올라온 후에 비의 편지를 바탕으로 작성한 듯한 김태희 소속사에서 올린 공식입장 전문이다.



김태희 소속사의 공식 입장


안녕하세요 루아엔터테인먼트입니다.

배우 김태희씨와 정지훈씨가 서로의 가장 소중한 반려자로 연을 맺을 시기이기에 현재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연인으로서 사랑을 키워오며 마음과 신뢰가 쌓여 드디어 너무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에 결혼식은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천주교 성사로 진행할 예정이며,

양가 부모님들과 본인들의 뜻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공개드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양가 부모님들과 가족분들만 모시고 작고 뜻깊게 올릴 것이며 예식 후 신혼여행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실의 아름다운 선물인 자녀는 혼인 후에 천천히 계획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드리며 모범적인 부부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궁금하실 내용들은 상황마다 정리되는대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루아 엔터테인먼트 올림.







비의 편지는 담백하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다. 오랜 연애 기간만큼 진득하고 진실된 느낌이다. 힘들때나 행복할때나 변치 않고 본인의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는 부분과 신뢰가 쌓여 결실을 맺는다는 부분에서 은은하게 미소가 나온다. 위의 사진에서 보여준 내가 받은 느낌처럼 편지를 통해서도 왠지 이 두사람 아름답게 잘 살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가 주목하는 부부인만큼 내적으로 외적으로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좋은 부부가 되길 축복한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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